[책마을] 단죄가 아니라 자비가 정의를 완성한다
명분과 힘을 동시에 가진 게 사법제도다. 정의를 실현하는 한편 사람을 가두거나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사법제도의 타락이 초래할 결말은 그 무엇보다 비극적이다. 타락한 사법제도를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에서 잘못된 검찰 기소와 법원 판결에 맞서 오랫동안 싸워온 브라이언 스티븐슨 변호사는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에서 사법적 가해자에 대한 ‘서릿발 같은 단죄’는 옳은 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가 내놓은 해답은 ‘자비’다. 그는 “자비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조차 베풀어질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며 “이것이야말로 정의”라고 강조한다.

미국 인권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
미국 인권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
스티븐슨은 1985년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1989년 비영리단체인 이퀄저스티스이니셔티브를 설립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료 변론을 해왔다. 무고하게 또는 저지른 죄에 비해 지나치게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아 사형수가 된 100여명을 구했다.

그는 2012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TED 강연에서 ‘우리는 불의에 관해 말해야 합니다’라는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을 들려줘 TED 역사상 가장 긴 기립 박수를 받았다. TED는 미국 새플링재단이 운영하는 세계적 명성의 릴레이 강연회로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앨 고어 등 수많은 명사가 거쳐갔다.

저자는 자신이 변론한 흑인 사형수 월터 맥밀리언을 통해 ‘자비가 해답’이라고 확신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사건에 엮이기 전 월터는 탄탄한 펄프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1987년 그는 갑자기 대중의 관심이 큰 백인 여대생 살인 사건 피의자로 지목됐다.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위험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백인 유부녀와 바람을 피운 전력 때문이었다. 월터가 살던 앨라배마주는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만나는 걸 금기시했다. 결혼은 법적으로도 금지됐다. 앨라배마주 백인 사회가 볼 때 월터는 법적·윤리적으로 정해진 인종 간 경계를 무너뜨린 자였다.

앨라배마주의 사법 권력은 월터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다른 범죄자를 매수해 월터가 살인자임을 증언하게 했다. 재판지를 임의로 바꿔 배심원단을 백인만으로 꾸렸고, 월터의 무죄를 주장하는 이를 위증죄로 체포했다.

판사는 스티븐슨을 협박하고 월터가 무죄임을 보여주는 증거를 무시했다. 월터는 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재심을 거쳐 무죄 방면됐다.

주목할 부분은 석방된 뒤 월터가 보인 태도다. 그는 자신을 유죄로 몰았던 이들에게 민사소송을 걸었지만 약간의 배상만 받고 관련자들과 합의했다. 월터를 체포하고 기소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보안관은 아직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두려움과 분노’는 정의의 가장 큰 적이다. 앨라배마주 사법제도가 월터를 제거하고 싶어 했던 것은 월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가 흑백으로 인종을 갈라놓은 앨라배마주의 질서를 위협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월터는 석방 뒤 자신을 사형으로 내몰았던 사람들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저자는 “월터는 그에게 자비를 베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모두 진심으로 용서했다”고 설명한다.

월터는 “수감 당시 겪은 일들이 떠올라 괴롭다”고 호소하며 노인성 치매를 앓다가 2013년 숨을 거뒀다. 저자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을 모른 체할 경우 결국 그 영향이 우리 모두에게 미치기 마련”이라며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부재는 지역 공동체는 물론 나라 전체의 품위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