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파문’과 같은 비선(秘線)라인의 국정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과거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사들은 공(公)과 사(私)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한 대통령의 태도와 함께 권력형 비리 감찰시스템의 작동 불능을 원인으로 꼽았다.

비선라인이 월권을 저지르며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파문을 일으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5공화국 땐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 전경환 씨가, 노태우 정부에선 영부인의 고종사촌 동생으로 ‘6공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씨와 월계수회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땐 대통령의 아들이 문제가 됐다. 노무현 정부에선 ‘봉하대군’으로 불렸던 노 전 대통령 친형 노건평 씨가, 이명박 정부에선 ‘만사형통’이란 말을 유행시킨 이상득 전 의원이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최순실 블랙홀] 비선라인 국정 개입 뒤엔…무너진 감찰시스템 있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2014년 11월 비선실세설이 나돈 정윤회 씨(최순실 씨 전남편)가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방 등과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에 개입했다는 문건이 유출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불과 2년 전 비선라인 국정 개입의혹이 터졌음에도 비슷한 논란이 또 불거진 데 대해 전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 문제를 다루는 민정수석실의 한계를 꼽는다.

그는 “대통령 참모가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을 감시하는 데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서슬 퍼런 권력 주변의 잡음을 사심 없이 차단할 수 있어야 하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최순실 씨를 감찰해야 할 민정수석 추천서가 최씨 손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판에 사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겠느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 정부 초반부터 민정수석실을 비롯한 청와대 내에서 권력암투가 벌어져 비선라인에 대한 비리 감찰이 제대로 될 수 없었다”고 했다. ‘정윤회 문건 파동’을 놓고 조응천 당시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통령 핵심 측근들은 2014년 초반부터 연말까지 내홍설에 휘말렸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이 터지자 “국기문란 행위”라고 비판했지만 비선실세 국정 개입을 막을 실효적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상 참모와 대통령 친인척을 대상으로 감찰 업무를 맡은 특별감찰관제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특별감찰관제 신설을 공약했다. 2014년 6월 출범했으나 감찰관은 9개월 지난 2015년 3월 임명됐다. 이후 뚜렷한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석수 전 감찰관이 지난 8월 말 우병우 민정수석 감찰과 관련해 기자와 통화했다는 이유로 파문이 일자 사퇴했으며, 아직까지 후임이 임명되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과거 권력형 비리를 수사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사직동 팀과 같은 비선 사정라인도 사라져 비선라인 국정 개입 감시는 진공상태에 빠진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비선 국정 개입은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는 체제에서 빚어지는 구조적 문제여서 청와대 입김이 들어가지 않는 보다 중립적인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