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경쟁의 미학
구글 본사에는 커다란 공룡이 있다. 2013년 혁신을 찾아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정보기술(IT)기업으로 유명한 페이스북 구글 IBM을 차례로 탐방할 때 공룡과 처음 마주했다. 구글 관계자는 이 조형물을 IBM에 비유하며 “공룡이 되지 않으려고 잘 보이는 자리에 세웠다”고 했다.

조롱 섞인 묘사와 달리 IBM은 여전히 건재하다. 흐름에 둔하기는커녕 끊임없이 변화하며 성장하고 있다. 세상의 다양성을 존중한 혁신 사례도 많다.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성적소수자를 의미) 채용이 활발하며 최고경영자를 선출할 때도 이질화를 위해 전임과 전혀 다른 인물을 뽑기로 유명하다.

공룡에 빗댄 표현은 사실 라이벌에 대한 견제였다. 100년 이상 선두를 지킨 놀라운 신화에 위협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IBM 측 역시 신생 기업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의 바람대로 진짜 공룡이 될까 두려워 노력한다고 했다. 기업 성장의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쟁’, 강력한 라이벌의 존재가 이들을 세계적인 혁신 기업으로 이끌었다.

누군가 내게 결혼정보회사의 라이벌은 편의점이라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이 많은 남녀의 욕구를 충족하며 싱글에게 만족감을 주니 말이다. 혼자서도 잘살게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경쟁자가 아니냐고 물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세계 1, 2위를 다투던 노키아와 모토로라의 몰락을 지켜봤다. 2007년 아이폰 출시로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그들의 아성은 불과 10년 만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물이 마른 우물 안을 차지하기 위해 우물 밖은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과거 IBM과 애플은 컴퓨터 제조회사로 같은 곳에서 패권을 다퉜다. 지금은 솔루션과 스마트폰이란 다른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모두가 이기는 ‘윈윈 게임’을 펼쳤다. 구글과 IBM도 알파고와 왓슨으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하며 경계를 허무는 경쟁을 하고 있다.

경쟁을 의식할 상대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최고라는 자만에 경각심을 주는 게 뛰어난 라이벌의 등장이다. 당신 곁에는 좋은 라이벌이 있는가. 남을 무조건 이기기 위한 경쟁은 멈추고 이제 경계를 허물고 틀을 깨는 경쟁에 눈을 돌려보자.

박수경 < 듀오정보 대표 ceo@duon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