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 중 첫 작품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마리우스 페티파가 안무해 1890년 초연했다. 고전 발레의 조형미를 보여주는 동작과 기술이 여럿 있어서 ‘가장 교과서적인 발레’로 통한다. 1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유수의 발레단이 페티파의 원전을 바탕으로 재안무한 버전을 공연하는 이유다.
다음달 3~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다음달 3~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국립발레단은 다음달 3~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마르시아 하이데 칠레 산티아고발레단 단장(79)의 재안무 버전을 공연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를 거쳐 예술감독을 지낸 그는 첫 안무작으로 이 작품을 선택해 1987년 초연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은 1990년 이 작품의 루비 요정 역을 맡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솔리스트로 데뷔했다.

2주 전 내한해 국립발레단 단원을 직접 지도하고 있는 하이데 단장은 25일 “페티파의 안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되 관객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작품을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전막 분량이 약 4시간에 달하는 원작을 150분가량으로 줄였다. 서막과 1막은 쉬는 시간 없이 연이어 공연한다. “인터미션을 2회 정도 두고 짧게 공연하는 것이 더 낫다”는 설명이다.

남성 무용수의 비중은 늘어났다. 원작에서 오로라 공주는 1막부터 끊임없이 춤을 춘다. 반면 전막을 통틀어 두 번 뿐인 데지레 왕자의 독무 분량이 이번 무대에선 늘었다. 마녀 카라보스도 남성 무용수가 맡아 역동적인 춤을 보여준다.

마임을 비롯한 무용수들의 연기도 볼거리다. 하이데 단장은 “이야기 전개에 개연성을 더하고,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 연출을 보완했다”고 했다. 이 작품의 백미로 꼽히는 1막의 로즈 아다지오가 그렇다. 오로라 공주가 청혼하러 온 왕자 네 명과 차례로 손을 잡으며 한 다리로만 균형을 잡고 회전하는 아라베스크 동작을 선보이는 대목이다. 하이데 단장은 “대부분 이 장면에선 동작 기술을 완벽히 선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데 이번 공연에선 공주가 구혼자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누굴 골라야 할지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표현을 살렸다”고 말했다.

악역인 카라보스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것도 특징이다. 원작과 달리 작품의 맨 마지막까지 무대에 등장한다. 오로라와 데지레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을 때 멀리서 둘을 지켜보며 시기 어린 눈빛을 보낸다. ‘세상엔 언제나 선과 악이 공존하고, 악함과 대결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한 안무가의 장치다.

국립발레단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2004년 루돌프 누레예프 버전으로 공연한 이후 12년 만이다. 하이데 단장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예술감독 시절 강 단장을 각별히 아꼈다. 그는 “수진과는 엄마와 딸처럼 서로를 챙겼다”며 “그가 이끄는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 모두 열심인 데다 실력이 환상적”이라고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