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 임기 4년차 법칙이 있다. 측근 비리나 비선실세들의 국정 개입 의혹으로 각종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하고 여당에서도 등을 돌려 대통령이 탈당하면서 레임덕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또 이를 돌파하기 위해 반전 카드 등을 내놓은 것도 역대 정권의 공통점이다. 매 정권마다 출범 초반 ‘깨끗한 정부’를 표방했지만 ‘빈말’에 그쳤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집권 4년차 징크스’를 피해가지 못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및 최순실씨 의혹이 연일 터져 나오면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여당에서 조차 박근혜 대통령의 의혹 해명을 요구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조짐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나타났다. 김영삼 정부 이후 집권 4년차에 치러진 선거에서 여당은 늘 패배했고, 새누리당도 4월 총선에서 이 같은 전철을 밟았다.

집권 4년차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것은 임기 말 측근 비리 의혹 등 각종 ‘게이트’와 관련이 깊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4년차였던 1991년 ‘수서비리 사건’으로 장병조 당시 청와대 비서관 등이 구속되면서 국정 장악력이 한순간에 약화됐다. 1992년 충남 연기군의 조직적인 관권 선거 의혹이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렸고, 노 전 대통령은 민주자유당을 탈당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엔 비자금 조성 등으로 감옥에 가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땐 집권 4년차에 차남 김현철씨가 연루된 한보 게이트가 터졌다. 권력의 무게 중심은 유력 대선주자였던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 쪽으로 급속히 쏠렸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신한국당을 탈당했고, 집권 말기 1년 동안 ‘식물 대통령’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과 새천년민주당 창당,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임기말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가 잇달아 터졌고, 권력의 추와 정보가 야권으로 몰리면서 레임덕이 본격화됐다. 김 전 대통령도 임기말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땐 임기 후반기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개발,행담도 개발 스캔들과 ‘김재록 게이트’, ‘바다이야기’파문이 연이어 터지면서 권력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내에서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 시작했고, 결국 노 전 대통령도 탈당했다.

이명박 정부 말기 땐 ‘영포(경북 영일-포항) 게이트’와 저축은행 비리 사태 등으로 파문이 일었다. 다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당을 탈당하지는 않았다.

한국갤럽의 역대 대통령 직무수행평가(1988년~2016년) 자료에 따르면 정권 말 각종 게이트로 임기 초반 50~70%대에 이르던 지지율은 임기말 어김없이 20%대 이하로 떨어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 2분기에 57%의 지지율을 나타냈다가 5년차 2분기엔 12%로 하락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1년차 83%(2,3분기)의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으나 임기 5년차 2분기엔 7%로 곤두박질 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년차 1분기에 71%를 기록했다가 24%의 지지율로 임기를 마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년차 60%를 보였으나 5년차 1분기에는 16%까지 떨어졌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1년차 1분기 52% 였던 지지율이 5년차 4분기 23%로 하락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1년차 3분기 60%로 정점을 찍었다가 10월 2주차 26%로 취임 후 최저를 나타냈다.

집권 말 레임덕을 돌파하기 위해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모두 사정카드를 들고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방위 부패 청산, 이 전 대통령의 토착·교육·권력형 등 3대 비리와의 전쟁 선포 등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권력구도만 바꾸자는 ‘원포인트’개헌을 제안한 것도 정국 돌파용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개헌 카드를 꺼낸 것도 최순실씨 의혹들을 정면돌파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각종 의혹들이 임기 4년차에 불거지는 것은 5년 단임제의 속성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 측근 비리나 비선실세 국정 개입 논란은 임기 초반부터 있어왔지만, 힘이 센 정권 초반에는 묻혀 있다가 권력이 하향곡선을 긋는 시점에서 여기 저기서 새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