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예정됐던 캐나다와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포괄적 경제무역협정(CETA)’의 최종 서명이 결국 무산될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에 따르면 샤를 미셸 벨기에 연방정부 총리는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벨기에 지방정부 관계자들과 회담한 뒤 “우리는 CETA에 서명할 수 있는 위치에 와 있지 않다”고 말했다. EU의 무역협정에는 28개 회원국이 모두 동의해야 하기 때문에 벨기에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협정의 무산을 뜻한다. 이에 따라 오는 27일 브뤼셀에서 예정돼 있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참석하는 CETA 조인식은 취소됐다.

벨기에 왈로니아 지방이 주민투표로 CETA에 반대를 표명했고, 이 때문에 폴 마그네트 왈로니아 지방 총리가 공식적으로 CETA 반대 결정을 통보했으며 당초 CETA에 찬성했던 벨기에 연방정부도 이 때문에 서명을 할 수 없게 됐다. 왈로니아 지역 수도 나무르를 직접 찾아 설득하려 했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통상장관은 지난 21일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했으며 22일 아침 한 차례 더 마그네트 총리와 면담했으나 소득 없이 캐나다로 돌아갔다. 이후 EU 관계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벨기에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사용 지역이 나뉘어 있다. 이 가운데 프랑스어 사용 지역을 뜻하는 왈로니아 지방 주민은 모두 350만명으로 5억명에 이르는 전체 EU 인구의 0.7%에 불과하지만 지난 여름 EU 집행위원회가 통상협정시 회원국 전체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을 바꾸면서 전체 협상을 깨뜨릴 수 있는 힘을 얻게 됐다.

왈로니아 지역 주민들은 CETA를 통해 캐나다산 쇠고기와 돼지고기 수입이 늘어나고 지방정부의 정책결정권이 캐나다 소재 다국적기업 등에 휘둘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反) 세계화 운동 단체들은 이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CETA 허용이 곧 미국과의 FTA인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제시했다. CETA는 EU가 주요 7개국(G7) 국가와 처음으로 체결 예정이었던 FTA였기 때문에 이 협상의 무산 후폭풍은 상당할 전망이다.

특히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후 영국과 FTA를 체결하기는 매우 어려워질 전망이다. CETA 협상에 참여했던 카렐 데 구트 전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FT에 “지난 여름 회원국별 비준으로 바꾼 것이 역사적 실수였다”며 “모든 회원국의 비준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고 협상에서 사용할 카드도 사라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라면 EU는 무역협정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EU 회원국의 통상담당 관료는 “모두가 왈로니아 주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정치논리가 무역논리를 압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