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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도시 이야기-청송] 푸른 소나무 많은 '무릉도원'…정승 13·왕비 3명 배출한 '청송 심씨' 집성촌

입력 2016-10-24 19:18:04 | 수정 2016-10-24 23:06:41 | 지면정보 2016-10-25 A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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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브랜드가 경쟁력이다 - '국제 힐링도시' 경북 청송 <상>

역사로 본 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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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의 옛 이름은 청부현(靑鳧縣)이다. 청부는 ‘푸른 물오리’라는 뜻이다. 산이 깊고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풍부한 고장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청송이라는 지명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때는 조선 세종 5년인 1423년이다. 청부현과 인근 송생현(松生縣)을 합쳐 고을 명칭을 현 지명인 청송군(靑松郡)으로 바꿨다. 청부현의 ‘청(靑)’자와 송생현의 ‘송(松)’자에서 따왔다.

조선 세조 5년(1459)에는 청송군에서 청송도호부로 승격됐다. 도호부는 지금의 도청 소재지다. 당시에도 청송은 인구가 1000명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조그만 마을이었다. 그럼에도 청송이 인근 안동과 함께 경상도를 대표하는 도호부가 된 이유는 세조의 모후이자 세종의 정비인 소헌왕후의 내향(內鄕·왕비의 친정이 있는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청송은 1895년 갑오개혁 때 군으로 낮춰지기 전까지 437년 동안 도호부였다.

청송은 예로부터 안동과 함께 명문가들이 자리 잡은 영남의 대표 고장이었다. 조선시대 문신들은 청송을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이라고 칭하며 관직에서 은퇴한 뒤 이곳에서 살았다. 대표 명문가는 소헌왕후로 대표되는 청송 심씨와 진성 이씨다. 청송 심씨는 조선시대 정승 13명, 왕비 3명을 배출했다. 정승 수는 전주 이씨, 동래 정씨, 안동 김씨에 이어 네 번째다. 청송군 파천면에는 지금도 청송 심씨 일가가 집성촌을 이뤄 살아가고 있다. 19세기 말 지어진 99칸짜리 기와집인 송소고택(사진)은 심씨 일가의 대표 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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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표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을 배출한 진성 이씨도 청송을 본관으로 두고 있다. 현 청송군 진보면을 조선시대 때는 진성이라고 불렀다. 이황은 관직에 있으면서 고향인 청송을 그리워하며 ‘청송백학’이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청송읍 송생리에는 남양 홍씨 집성촌도 있다.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영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은 청송이 배출한 인재다. 대하소설 《객주》를 쓴 소설가 김주영 씨도 이 지역 출신이다.

청송=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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