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개헌론을 제기했다. 박 대통령은 “1987년 체제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킬 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야 할 때”라며 “임기 내 헌법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에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 개헌안을 마련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촉구함에 따라 여야 정치권은 정파적 이해득실을 계산하면서 즉각 다양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그간 몇 차례나 ‘개헌론은 곧 블랙홀’이라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던 대통령인 만큼 다소는 뜻밖의 제안으로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헌론만큼 다양한 시각차가 엄존하는 아젠다도 드물다. 개헌을 적극 주장하는 쪽도 그 지향점과 구체적 내용으로 가면 동상이몽이 허다하다. 박 대통령이 어제 강조한 대로 “30년간 시행돼온 5년 단임 대통령제 헌법이 지금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됐다”는 지적에 동의하는 그룹에서도 지금 맞는 옷이 어떤 것이냐는 문제에 이르면 십인십색인 게 현실이다.

국회에서든 정부에서든 개헌 논의가 본격화된다면 아마도 제1의 아젠다는 권력구조 문제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의 소위 ‘원포인트 개헌’이나 무수한 국회발(發) 국가권력 개편 주장이 다 그랬다. 박 대통령도 본인 임기 내 5년 단임에 대한 개헌을 강조했을 뿐 구체적인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문제는 이런 중요한, 그러면서도 당파적 이해관계는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슈를 우리 정치권이,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이성적으로 논의하고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마련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국회부터 그럴 수준인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87년 체제’에 대한 반성적 접근이라면 4+4년의 대통령 중임제가 유력한 대안이 될 만도 하지만, 국회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정치판의 중간보스들은 툭하면 ‘제왕적 대통령’ 운운하며 내각제를 주창하던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부통령의 이원집정제 아이디어까지 나온 판이니 이 문제 하나만으로도 각 정파의 입장이 교착상황에 이를 것이 뻔하다. 국민투표에 부칠 개정안이 과연 박 대통령 임기 내에 도출될 것인지도 의문이다.

권력구조 문제만도 아니다. 헌법의 방향성을 둘러싼 무수한 사회적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것이다. 경제, 환경, 과학, 지방자치, 문화체육, 장애 소외층 등 각 부문이 ‘계급·계층 이익’을 극대화하는 조항을 헌법에 담거나 강화하자고 나설 때 누가 이를 조정하고 바로 잡을 것인가. 지금까지도 걸핏하면 이익집단 간 의안 맞바꾸기 식으로 헌법이 누더기처럼 변해온 것이 사실이다. 30년 전 ‘(관 주도 경제가 아니라) 민주적 경제’에 대한 논의가 ‘경제민주화’로 둔갑해버린 119조2항과 같은 치명적 오류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개헌에 대한 각계 바람이 진정 강력하다면 차분한 논의까지 사시로 볼 이유는 없다. 그러나 어떤 제도든 운용자들이 성패를 좌우하는 법이다. 미국 프랑스의 대통령제와 일본 영국의 내각제에는 그 어떤 우열관계도 없다. 지금과 같은 국회·정치권 풍토라면 어떤 훌륭한 제도라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원포인트가 될지, 87년 체제의 전면개편이 될지 가늠키도 힘든 복잡한 개헌방정식이 어떻든 테이블에 오르게 됐다. 우리 사회의 역량을 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