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저금리의 함정
역사상 초유의 저금리 현상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지만, 경제는 여전히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플러스 금리지만, 일부 선진국은 회사채까지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가. 저축을 해도 원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당연히 저축은 줄어들고 소비는 늘어나야 한다. 기업 역시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에도 투자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민간부문의 수요가 증가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저금리 정책의 논리다. 그런데 웬일인지 마이너스 금리에서도 이런 기제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추가 인하를 주장하지만, 저금리 정책에 대한 회의도 만만치 않다.

저금리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소비자도 기업도 내일이 불안하니 아무리 낮은 금리에서도 소비와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한 내일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만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디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오르지 않으니 서둘러 재화를 구입할 이유도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이렇게 시작됐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소비가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인구 고령화도 소비 대신 저축을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년은 일정한데, 100세까지 살아가려면 저축을 더 늘려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저금리에서 일정한 이자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저축을 더 늘려야 한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소비성향이 낮고 저축률은 무려 40%에 달하는 중국의 수십억 인구가 실질금리를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가 사상 초유의 저금리에서도 소비가 크게 늘지 않는 함정에 빠져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가 먼저 나서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구조개혁과 규제혁신을 통해 생산성과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재정을 확대해 경제 회복에 대한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에만 매달려 소비와 투자를 진작하기에 앞서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선도하고, 교육과 차세대 산업 육성을 통해 미래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정부 모든 부처가 오케스트라처럼 경제 활성화 코드에 맞춰 조화롭고 일치된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금리는 낮추고 재정을 늘린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수를 확대하는 등 부처마다 각자도생(各自圖生)하면 어떤 정책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정갑영 < 전 연세대 총장 jeongky@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