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박현옥 씨가 자신의 작품 ‘화병 속 꽃’을 설명하고 있다.
서양화가 박현옥 씨가 자신의 작품 ‘화병 속 꽃’을 설명하고 있다.
“그림은 머리가 아니라 삶으로 그리는 겁니다. 그림이 있는 자리는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삶을 연소함으로써 더욱 빛납니다. 삶과 그림이 일치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26일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시작하는 중견화가 박현옥 금호전기 고문(62). 그는 “변화무쌍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반영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화여대 의류학과와 미대 대학원을 졸업한 박 고문은 ‘꽃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다. 그는 바쁜 교직생활과 회사 업무 탓에 그림 그릴 엄두도 못 내다 1990년대 초 늦깎이로 작업을 시작해 꽃, 소나무 등을 그려왔다. 1999년 첫 개인전을 연 그는 시카고, 홍콩, 로스앤젤레스, 대만, 싱가포르, 두바이 등에서의 전시와 잇단 아트페어 출품으로 주목받았다. 2007년에는 프랑스 파리의 갤러리 ‘에스파스 퀼튀르’(문화공간)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다음달 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 주제는 ‘무한화서(無限花序: 밑에서부터 위로 꽃망울이 터지는 꽃차례)’. 이성복 시인의 시집 제목에서 따왔다. 옻칠, 석채, 아크릴 등을 뒤섞은 혼합재료로 끊임없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꽃과 소나무 등을 그린 신작 40여점을 걸었다.

디자인 전문가인 박 고문의 작업은 예쁘고 화사한 그림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인생의 행복한 순간을 화면에 수놓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풍경화나 정물화는 독창적이다.

그가 주로 그리는 장미, 양귀비, 매화, 벚꽃은 비교적 흔한 꽃이다. 평범한 꽃이지만 삶의 절정(성공·행복)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에 만개한 순간을 화면에 화려하게 풀어냈다. 물감을 두툼이 쌓아 질감을 만들어낸 꽃 작품에서는 생동감이 넘친다. 잔잔한 고졸미와 세련된 현대미가 융합된 그림은 전통 오방색을 기본으로 사용해서인지 여유와 절제의 품격이 느껴진다.

최근에는 옻칠한 화면에 어슴푸레 안개 낀 소나무를 살짝 올려놓는다. 그는 “사계절 변함없이 서로를 경계하거나 배척하는 기미도 없이 서 있는 소나무의 모습이 현대인에게 기개와 절개를 가르쳐주는 것 같다”며 “사람살이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에 소나무를 즐겨 그린다”고 설명했다. (02)379-031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