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 속 달리는 자기부상열차…서울~부산 16분
서울에서 직선 거리로 325㎞ 떨어진 부산까지 16분 만에 주파하는 초고속 열차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세계 최대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창업자 엘론 머스크가 2013년 비행기보다 두 배 빠른 초고속열차 하이퍼루프(Hyperloop)를 제작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지 3년 만에 국내에서도 독자 개발에 시동이 걸렸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UNIST(울산과학기술원)는 지난 21일 제주에서 열린 한국철도학회에서 하이퍼루프 연구회를 결성했다. 내년 상반기 진공 튜브 속을 달리는 한국판 하이퍼루프의 밑그림을 내놓을 계획이다.

◆보잉737보다 빠른 비결은 진공

철도기술연구원과 UNIST가 각각 개발 중인 한국형 하이퍼루프(아음속 캡슐 열차)는 최대 시속이 1220㎞에 이른다. 하이퍼루프와 같다. 국내선에 투입되는 보잉 737 여객기보다 1.5배 빠르다.

아음속 캡슐 열차는 지름 2~3m 튜브 터널을 달리는 40인승 캡슐 한 량으로 구성된다. 지름 2.23m 터널을 달리는 미국의 28인승 하이퍼루프보다 크고 길다. 빠른 속도를 내는 비결은 진공(眞空)에 가까운 튜브 터널에 있다. 일반 대기를 달리는 기차는 아무리 빨라도 시속 700㎞를 넘을 수 없다. 이 속도를 넘어가면 차체가 공기 저항을 받아 양력(날아오르는 힘)이 생겨 전복되거나 더 속도를 내지 못한다. 이런 공기 저항을 없애기 위해 튜브 속을 1000분의 1기압 상태로 유지한다.

캡슐 열차는 바퀴로 달리지 않고 튜브 속에서 살짝 뜬 상태로 달린다. 하이퍼루프는 당초 차량 앞쪽에 거대한 팬을 설치해 차량 앞쪽 공기를 빨아들인 뒤 바닥으로 배출해 부력을 얻는 방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 방식처럼 자석의 반발력을 이용하는 자기부상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정연우 UNIST 교수는 “차량에 공기압축기를 달면 열이 발생하는데 이 열을 식히려면 3t 이상의 물을 싣고 다녀야 하는 등 차량 무게가 늘어난다”며 “초전도 자석이나 전자석, 영구 자석 등 자석의 반발력을 이용해 차체를 띄우는 자기부상 방식이 더 선호된다”고 말했다.

◆자석이 밀고 끄는 힘으로 가속

열차 아래쪽에는 자석이 달렸고, 바닥에는 자석과 같은 성질을 지닌 자기장이 생기는 코일이 있다. 캡슐 열차가 달리는 원리는 전기모터가 돌아가는 것과 같다. 전기모터는 자석이 같은 극끼리 밀어내고 다른 극끼리 끌어당기는 원리를 이용한다.

다만 전기모터는 빙글빙글 도는 형태고, 캡슐 열차는 길게 펼쳐 놓은 형태일 뿐이다. 캡슐이 긴 선로를 지나는 동안 자기장을 계속 바꿔주면 자석이 밀고 끄는 방식으로 가속도를 얻을 수 있다.

이관섭 철도기술연구원 자기부상철도연구팀장은 “진공에 가까운 환경에서 20㎞가량 가속하면 1000㎞ 이상 속도를 거뜬히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철도기술연구원이 추진 중인 캡슐 열차에는 차체 옆면에 작은 날개가 달려 있어 속도가 올라가면 양력(비행기처럼 떠오르는 힘)이 발생한다.

선로 중간마다 태양광 전지와 풍력발전기,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해 전기를 공급한다.

◆세계 300개 도시가 시장

미국의 전문회사 하이퍼루프원은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현재 네바다 사막에 시험 선로를 짓고 다음달 첫 운행 모델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하이퍼루프 전문기업인 HTT는 슬로바키아, 중국 도시들과 선로 건설을 협의 중이다. 캐나다 트랜스포드사와 두바이, 스웨덴 등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머스크는 우선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사이 560㎞ 구간을 35분 만에 주파하는 하이퍼루프로 잇자고 제안했다. 건설 비용은 60억달러(약 6조7000억원)로 추산된다. 머스크는 “건설비가 기존 고속철도의 10분의 1에 불과하고 편도 운임도 20달러(서울~부산 간 KTX 일반석의 40% 수준)로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캡슐 열차와 하이퍼루프가 인구 300만명 이상 도시의 1000㎞ 이내 인접한 환경에서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하이퍼루프를 도입할 만한 조건의 도시가 세계적으로 300개가량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