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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붉게, 젖다 - 이선균(1961~ )

입력 2016-10-23 18:15:27 | 수정 2016-10-24 02:44:07 | 지면정보 2016-10-24 A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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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붉게, 젖다 - 이선균(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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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의 힘으로 엄마 혼자 동생 낳았지.

엄마의 신음에 마른 창호가 젖고
아기의 고고성(呱呱聲) 새벽달을 찢도록 아버지 오지 않았네.

추수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지 해남으로 진도로 밥을 벌러 떠돌고
혼자 육 남매를 낳고도 손수 미역국 끓이던 엄마.

저 바다도 홀로 산고(産苦) 치르네.
안개 뒤집어쓰고 몸 뒤트는 소리
이슬 비친 수평선 눈시울 붉어오는 소리

희미한 문고리, 새벽달을 붙잡고
태양의 붉은 머리 밀어올릴 때

구름 뒤섞인 바다 핏물 들 때
그 많은 파도가 엄마를 덮쳐
뻐근하게 독백 부풀어오르고
먼 데 햇살은 또 저 혼자 지글거리고

엄마는 무수한 엄마가 되어 젖고 젖었지.

시집 《언뜻,》(천년의시작) 中


붉게 젖는 것은 노을뿐일까. 문고리의 힘으로 아이를 낳은 어머니를 떠올려 본다. 바다와 어머니! 그 모성의 가여움에 젖어 본 적이 있는가. 바다에선 섬도 파도도 물고기도 저 홀로 몸을 푼다. 이슬 비친 수평선을 본 적이 있다. 지금도 수평선 너머에선 몸 풀기 위해 새벽달을 붙잡는 생명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가을 나무들도 어떤 산란을 위해 붉은빛을 끌어모으는 중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자꾸만 외롭고 가슴이 먹먹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소연 < 시인(2014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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