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재난망 구축, 어설픈 합의는 안된다
지난달 12일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 경주에서 발생했다. 많은 국민은 지진 자체의 공포와는 별개로 전화, 문자, 모바일 메신저 등이 불통되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의 허술함에 분개했다.

이를 계기로 시범 사업이 진행 중인 재난망 구축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정부와 민간 사업자 간 통화도달 범위 적용 방식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통화도달 범위는 재난망 구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를 국토면적 기준으로 할 것이냐, 사람 기준으로 할 것이냐에 따라 예산이 많게는 네 배나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물론 수조원의 예산이 책정되는 국책 사업이니만큼 방식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겠지만, 정부와 사업자들이 인명을 놓고 실효성과 투자금액 사이에서 적절한 합의점을 찾으려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은 시나리오를 갖고 ‘이 정도면 괜찮다’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 식의 탁상공론으로 서로를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재난망 구축 사업은 일반적인 사업들처럼 이해관계자 간의 합의점을 도출하려는 태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실제 재난이 일어나면 그 시나리오가 맞는지 틀린지에 따라 많게는 수십만, 수백만명의 목숨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모든 가능성을 대비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최선점을 모색하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지진 빈번국인 일본은 지난 6월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인공위성을 사용한 휴대폰 무선통신 시스템의 시범 타입을 공개하면서 위성통신을 활용한 재난망 구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과 구마모토 대지진을 겪은 뒤 기존의 지상 기지국과 통신망 기반의 재난망은 실효성이 낮다는 점을 간파하고, 다시금 차세대 기술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이다. 한국에도 이런 대체 기술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한국은 더 이상 재난 안전국이 아니다. 이제는 국민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방비책을 어떻게 잘 마련하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사업 결과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현시점에서의 차세대 기술, 솔루션을 기반으로 한 사업의 전면 재검토까지 고려해야 한다. 국가적 재난 사안을 가지고 탁상공론식 접근으로 도박하지 말고, 최선의 방안을 모색해 최고의 대비를 해 나가길 바란다.

이성준 < 디지파이코리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