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정희 기자 i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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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굴기(堀起)라는 단어가 있다. ‘우뚝 선다’는 뜻으로, 주요 2개국(G2)으로 급성장한 중국을 상징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그렇다면 중국 기업가 중에서 굴기에 어울리는 사람은 누굴까. 여러 차례의 실패에도 알리바바에 이어 꿋꿋이 중국 2위의 전자상거래 회사로 자리매김한 징둥상청(京東商城·JD닷컴)의 류창둥(劉强東) 회장이 있다.

시련이 기회…사스 덕에 전자상거래 진출

류 회장은 1974년 중국 장쑤성 쑤첸시에서 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베이징으로 유학, 명문대인 인민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공무원을 하라는 부모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회학으론 큰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컴퓨터 코딩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대학 3학년 땐 프로그래밍으로 돈을 벌었다.

창업 기회만 엿보던 그는 비교적 진출이 쉬운 요식업에 나섰다. 그는 아버지에게 20만위안(약 3600만원)을 빌려 베이징에 식당을 차렸다. 하지만 식당은 몇 달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사업이 실패하자 여기저기서 막대한 빚 독촉을 받았다. 아버지도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1996년 대학을 졸업한 뒤 당장 돈이 궁했던 류 회장은 창업은커녕 취직이 급했다. 그는 일본계 건강보조기구 회사인 일본생명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지낸 2년은 전화위복이 됐다. 류 회장은 “과거 식당을 운영하면서 감독, 회계, 금융 등 관리 업무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생명에서 일하면서 프로그래밍 일도 악착같이 병행했다. 2년 만에 빚을 모두 갚고, 창업자금까지 마련해 퇴사했다. 그는 1998년 다시 도전에 나섰다.

류 회장은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에 전자제품 판매 회사 ‘징둥공사’를 창립했다. 지금 알리바바에 이어 중국 2위 전자상거래 회사로 발돋움한 JD닷컴의 전신이다. 자본금은 1만2000위안(약 210만원)이 전부. 대학 시절 친구, 스승 모두가 변변한 전자 제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보고 잠재 수요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징둥공사는 원래 오프라인 매장으로 출발했지만 나중에 온라인 유통시장에만 주력했다. 2002년 중국 전역에 불어닥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외출을 꺼렸다. 류 회장은 온라인에 사활을 걸었다. 아예 오프라인 매장 문을 닫고 온라인에만 집중했다. 2004년 온라인 유통 사이트인 ‘360바이닷컴’을 만들어 JD닷컴의 초석을 다졌다. 류 회장은 “사스가 아니었다면 전자상거래에 진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짝퉁 근절, 빠른 배송’으로 승부

류 회장은 JD닷컴이 취급하는 제품을 의류, 액세서리, 화장품 등 소비재로 넓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다른 문제에 맞닥뜨렸다. 배달서비스가 느리고 믿을 수 없다는 소비자의 원성이 빗발쳤다. 내친김에 그는 2007년 물류와 배달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물류를 직접 관리해 소비자의 불만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류 회장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소셜미디어 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리스크는 고려하지 않는 무모한 사업가’로 오해받는다”며 “하지만 그는 직접 겪은 숱한 실패 덕에 철저한 경영 감각을 익힌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JD닷컴은 매년 대학 졸업생 100명을 뽑아 1년간 기본부터 가르친다. 경력자는 받지 않는다. 다른 회사에서 배운 ‘오염된’ 기업문화를 끌고 와선 안 된다는 것이 류 회장의 원칙이다. 이들은 류 회장의 강의를 수강하고, 점심 땐 그와 식사를 함께한다. 또 주말엔 사업 여행에 함께 나서며 그와의 친밀감도 형성한다. 매주 그에게 이메일 리포트를 써서 낸다. 류 회장은 매일 아침 관리자 200명을 모아 놓고 전날 있었던 실패 사례에 대해 보고받고, 이를 모든 물류센터에 방송한다.

류 회장이 이처럼 인력 관리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JD닷컴이 중국 1위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와 차별화하는 무기는 ‘신속 배송’과 ‘짝퉁 차단’이다. JD닷컴은 엄격한 정품 기준을 적용, 위반한 업체엔 상품 1개당 100만위안까지 벌금을 부과한다. 소비자를 다수의 기업과 연결해 선택권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추는 알리바바와는 차이가 있다. ‘짝퉁’ 물건이 빈번하게 나타나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는 중국에선 JD닷컴의 전략이 큰 호응을 얻었다. 상거래의 기본인 ‘신뢰’에 충실한 전략이었다. 이는 시장을 선점한 알리바바를 추격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JD닷컴은 중국에 알리바바보다 많은 물류창고 123개와 배송 거점 3210개를 구축해 두고 있다. 50% 이상의 상품을 하루 안에 배송한다. 또 11만여명의 임직원 중 전문 택배 배달원이 6만여명에 이른다. 류 회장이 ‘물류 관리’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중산층 공략에 주력…“알리바바 게 섰거라”

중국 제2의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성장한 JD닷컴은 매년 두 자릿수 매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3분기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38% 늘어난 590억~610억달러(약 9조8000억~10조1600억원)로 예상하고 있다. 3분기 활동사용자 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73% 늘어난 1억6900만명이다. 류 회장은 “중국 중산층이 자주 쓰는 전자상거래와 전자상거래를 지원하는 금융서비스, 전자상거래 기능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클라우드 기술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 회장은 텐센트와 협력해 알리바바를 뛰어넘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온라인게임 기업인 텐센트를 1대 주주로 끌어들였다. 텐센트 위챗이 보유한 수억명의 사용자를 JD닷컴으로 맞이할 기회를 마련한 셈이다. 류 회장은 “우리 고객 중 3분의 1이 위챗을 통해서 온다”며 “(텐센트가 위치한) 선전에 있는 인력 1000여명을 텐센트의 다양한 부서와 협력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