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Success Story] 드롭박스·에어비앤비…'유니콘' 키운 미국 벤처투자계 '미다스'
‘backed by Sequoia(세쿼이아가 투자한).’ 블룸버그통신에서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인수 관련 기사를 읽다 보면 십중팔구 이 같은 문구가 들어 있다. 문구에 나오는 세쿼이아, 즉 세쿼이아캐피털은 지난해 벤처캐피털(VC) 중 가장 많은 13개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을 발굴해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최고의 벤처투자자를 꼽는 ‘미다스 리스트’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장 많은 세 명의 투자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옆 먼로파크의 낡은 건물에 자리 잡은 세쿼이아캐피털이 투자한 250개 기업은 시가총액이 1조4000억달러(약 1545조6000억원)에 이른다. 나스닥지수 상장기업 전체 시가총액의 22%다. 그들이 투자한 기업 중에는 애플, 구글 등 실리콘밸리의 맥을 잇는 기업이 포함돼 있다.

◆겉모습보다 경쟁력 갖춘 스타트업에 투자

세쿼이아캐피털은 실리콘밸리의 걸출한 영업담당 임원이던 돈 밸런타인이 1972년 설립했다. VC업계에서 드문 장수 업체다. 밸런타인 전 최고경영자(CEO)는 스타트업의 외양을 보지 않았다. 커피숍에 있는 스타트업, 값싼 임대 사무실에 입주한 스타트업도 가리지 않았다. 대부분 VC가 어떻게 최고 스타트업을 찾을 것인가에 대해서만 말하는 동안 세쿼이아캐피털은 시장에 초점을 맞춰왔다. 세쿼이아캐피털은 다른 VC에 비해 투자를 원하는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빈틈없이 검토하기로 유명하다.

그들 자신도 겉모습을 꾸미지 않는다. 과거 투자 성과를 액자에 걸어놓지도, 사무실을 비싸게 치장하지도 않는다. 세쿼이아캐피털의 파트너들은 오래된 건물에 서서 일한다. 포브스는 “세쿼이아캐피털 파트너는 그들 자신이 부자라는 걸 모르는 듯하다”고 전했다.

세쿼이아캐피털 파트너들은 처음 투자를 의뢰받으면 직접 스타트업 사무실까지 찾아간다. 첫 번째 투자 조건은 스타트업이 진출하는 시장이 클 가능성이 있는지다. 시장이 유망하고 스타트업의 수익모델이 확실하면 즉각 투자에 나선다. 세쿼이아캐피털 파트너들에게 오전에 자금을 요청해 미팅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그날 저녁 투자계약서에 서명할 수도 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CEO가 세쿼이아캐피털의 팬이다. 머스크가 1999년 지급결제 서비스 회사인 페이팔을 창업할 땐 심지어 변호사가 서류를 처리하기도 전에 그들은 500만달러를 보냈다.
닷컴 거품 투자 실패로 얻은 투자원칙

세쿼이아캐피털도 1990년대 닷컴 거품을 비켜가지 못했다. 밸런타인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당시 마이클 모리츠 파트너는 처음으로 8억6100만달러의 대규모 투자펀드를 조성했다. 상장 직전 단계 회사에 투자하는 펀드였다. 이 자금으로 채소 유통 벤처회사인 웹밴과 인터넷 장난감 유통 벤처회사인 이토이즈 등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이 투자는 혹독한 실패로 드러났다. 당시 초기 수익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어떻게 비용을 줄일 것인지에 대한 관리가 없었다. 시장 수요가 있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각각 1996년, 1995년 창업한 두 회사는 닷컴 거품이 터진 2001년 나란히 파산했다. 모리츠 파트너가 조성한 펀드는 두 회사가 파산한 지 수년 뒤인 2006년까지 무려 연 11%의 손실률을 나타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고, 정보기술(IT) 기업 스타트업은 다시 위기를 맞았다. 이번엔 방심하지 않았다. 가능성 있는 소수 스타트업에만 집중 투자했다. 과거 웹밴과 같은 사업모델을 가진 인스타카트도 포함됐다. 웹밴과 달리 인스타카트에는 시장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모바일폰과 인터넷 덕에 언제 어디서나 주문할 수 있고, 즉각 채소가 배송됐기 때문이다. 기존 매장을 활용해 비용을 크게 아꼈다는 점도 감안했다.

세쿼이아캐피털은 과거 실패를 딛고 잇따라 성과를 내놓고 있다. 2003년 대학 기금 등 30여곳의 자금을 끌어모아 시작한 세쿼이아벤처11차펀드는 13년 만에 3억87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연간 41%의 수익률이다. 2010년 설립된 13차 펀드는 연간 88%의 수익률을 내고 있다.

◆“투자업체에 조언 아끼지 않아”

세쿼이아캐피털을 이끄는 모리츠 파트너는 옥스퍼드대 졸업생으로 미국 주간지 타임에서 기자로 일했다. 레온은 코넬대에서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휴렛팩커드(HP)와 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컴퓨터를 팔았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경력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스타트업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닷컴 거품 당시의 실패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기가 많다. 세쿼이아캐피털이 세 차례 투자한 와츠앱이 엔지니어 채용에 어려움을 겪을 때 짐 괴츠 파트너는 열두 쌍의 와츠앱 지원자·배우자들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2012년 투자한 지급결제 서비스 회사 스트라이프의 존 콜리슨 창업자가 그들의 서비스를 한 금융회사에 팔려고 할 땐 모리츠는 두 번의 리허설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세쿼이아를 좋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파트너들이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을 경험한 동료 기업가라는 점이다.” 세쿼이아캐피털이 2005년 창업 때부터 네 차례 투자한 인터넷 보안회사 팰러앨토네트웍스의 니어 주크 CEO는 이같이 말했다. 예를 들면 유튜브 투자와 상장을 이끌어낸 롤로프 보타 파트너는 과거 페이팔 CEO였다. 세쿼이아캐피털은 홈페이지에 사업계획서 쓰는 법, 가격 매기는 법, 채용 소프트웨어, 이사회 운영 방법까지 설명해두고 있다.

◆소수 스타트업에 장기간 투자한다

최장 투자기간이 10년 정도인 다른 VC와 달리 16~17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준다. 될 만한 스타트업은 끝까지 돕겠다는 의미에서다. 1978년 22세에 불과한 스티브 잡스에게 투자한 지 18개월 만에 애플 주식을 처분한 데서 얻은 교훈이다.

세쿼이아캐피털은 큰 액수로 상장 직전 단계 기업에 투자하기보다 막 창업 단계를 벗어난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예전보다 투자 건수도 줄였다. 될성 부른 떡잎 스타트업을 골라 장기간 진득하게 투자한다.

이 두 가지 원칙은 2014년 알리바바 상장을 통해 잘 드러났다. 12~13년 전 중국 기술 스타트업에 주목했고, 당시 투자한 알리바바 주가는 2014년 9월 나스닥에 상장한 이후 50여거래일 만에 50% 상승해 큰 이익을 안겨줬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기업 JD닷컴과 최대 음식점 앱(응용프로그램)인 디엔핑 지분도 갖고 있다. 최근엔 헬스케어 정보기술(HCIT) 스타트업에도 장기간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