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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임권 수협중앙회장 "섬기는 리더십이 성공 비결이죠"

입력 2016-10-20 19:12:13 | 수정 2016-10-21 02:06:57 | 지면정보 2016-10-21 A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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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 바닷일 우습게 보다 선산 날려…빚내 사들인 명태 운반선으로 재기
선원들에게 반말 않고 '일류 대우'

바다에서 고생하는 생활 싫었지만…
부산수산대 졸업 후 은행에 취직…아버지 갑자기 세상 떠나 가업 물려받아
1978년 오일쇼크로 사업 실패 '쓴맛'…고전 끝에 대형선망 사업 '승승장구'

'공유지의 비극' 겪는 대한민국 바다
중국어선 불법조업 단호하게 대처해야 대한민국 해양주권 바로 선다
어민 섬기는 게 수협의 사명…수산업 돈 되는 산업으로 키울 것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기사 이미지 보기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임권 수협중앙회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 18일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 있는 ‘미자식당’을 찾았다. 1971년 수산시장이 서울역 인근 의주로에서 노량진으로 이사온 이래 45년간 줄곧 자리를 지켜온 식당이다. 한국 수산업을 대표하는 수협중앙회장이 자주 찾는 단골집이라니…. 기대가 컸다. 김 회장은 이런 기대에 불을 붙였다. “서울 사람은 속여도 나는 못 속여요. 맛있는 물고기는 척 보면 알죠.”

광어와 우럭회가 맨 먼저 상에 올랐다. 김 회장은 상추에 광어회를 싸서 한입에 털어 넣었다. “지난해 수협 회장직에 선출돼 서울에 올라오면서부터 단골이 됐어요. 중앙회 본부가 있는 잠실에서 여기까지 직원들을 모두 데리고 온다니까요.”

은행원에서 수산업자로 변신

대형선망수협 조합장을 지낸 김 회장은 지난해 2월 24대 수협중앙회장에 선출됐다. 고등어와 삼치잡이로만 한 해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그였다. 잘나가는 수산업체를 이끌다 왜 갑자기 수협중앙회장이 되려고 했는지 궁금했다.

김 회장은 등산 얘기부터 꺼냈다. 등산을 무척 자주 다닌다고 했다. 어느날 지금까지 다닌 산을 쭉 돌이켜 본 그는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정상에 오르면 바다가 보이는 산만 찾았다는 것이다. “지금껏 산을 다닌 것은 산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다를 보러 간 것이었음을 새삼 느꼈죠.”

수협 회장직을 맡은 이유도 등산과 같다고 했다. ‘수협 회장이라는 자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바다와 어민을 돌보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바다에서 먹고살았습니다. 이제 바다와 어민에게 ‘억만분의 일’이라도 갚아야겠다는 심정으로 나선 거예요.”

김 회장의 일생은 바다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1949년 경남 남해에서 6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어업에 종사했다. 아버지도 어선을 가진 수산업자였다. 덕분에 그의 성장기는 유복했다. 돈 걱정은 없었다. 어업에 소질도 있었다. 고교를 졸업할 무렵 스스로 53t짜리 목선을 제작하기도 했다.

가업을 이어 가길 원한 아버지의 희망대로 부산수산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졸업 후 진로는 뜻밖에도 수산업이 아니라 은행이었다. “아버지가 늘 바다에서 고생하시는 모습을 봐 왔기에 그렇게 살기 싫어 국민은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은행원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29세 때 가업을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장남인 그로서는 줄줄이 남은 동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아버지가 남긴 배를 몰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어받은 사업이었지만 청년 김임권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땐 기세등등했어요. 과감히 배를 한 척 더 지어 두 척을 운영했지요.”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1978년 찾아온 ‘제2차 오일쇼크’는 그의 사업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고향 선산까지 팔아 운영비로 충당하면서 사업을 이어 나가려고 발버둥쳤다. 결과는 처참했다. 1981년 쫓기듯 부산으로 떠났다. 1980년대 중반엔 경남 통영에서 민자항만 매립사업에 뛰어들었다. 또다시 실패했다. “연이은 실패에서 ‘밥 한 공기’의 가치를 처음 깨달았어요. 왜 줄줄이 실패했냐고요? 근본적으로 나 자신이 자만심에 가득 차 사업을 우습게 본 탓이죠, 뭐. 허허.”

그는 30대에 가족을 이끌고 부산 달동네를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결혼해서 딸이 셋이나 있을 때였어요. 도저히 이 세상은 사람 힘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죠.”

‘섬김의 리더십’으로 10년 만에 1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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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회 접시가 바닥을 드러낼 무렵 고등어구이가 나왔다. 고소한 육질이 입안에 맴돌았다. 김 회장은 고등어 한 점을 툭 떼어내 입으로 가져가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절치부심한 끝에 1994년부터 명태 운반선 사업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고교 선배가 싸게 배를 내놓겠다고 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동생 가게를 판 돈까지 보태서 샀죠.”

김 회장 운명은 이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운반선을 인수하자마자 갑자기 북태평양에서 명태가 엄청나게 잡히기 시작했다. 동생에게 빌린 돈은 한 달 만에 다 갚고 배 3척을 더 샀다.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1997년 외환위기마저도 그의 사업엔 도움이 됐다. 대금을 달러로 받는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큰 이득을 봤다.

‘치고 빠지는’ 타이밍도 좋았다. 김 회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명태 주력 어장인 러시아의 수산정책 변화를 눈여겨봤다. 당시 한국 선사들은 어선에서 잡은 물고기를 운반선에 옮기며 관행적으로 어획량을 축소 신고했다. 러시아는 이를 적발하기 위해 1999년부터 운반선에 싣는 고기를 검색 대상에 포함시켰다. “당시 저만 정책 변경 직전 운반선을 다 팔고 나왔죠. 그때 손을 떼지 못한 업체들은 모두 부도가 났습니다.”

김 회장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고등어와 삼치 등을 잡는 대형선망어업에 뛰어든 것이다. 대형선망은 고기를 잡는 본선 1척과 불을 밝히는 등선 2척, 운반선 3척 등 6척이 한 선단(1통)을 이룬다. 한 선단은 연평균 120억~15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김 회장 회사는 2통의 선단을 운영하는 중상급 규모다.

고등어구이와 딱 들어맞는 대구맑은탕이 나왔다. 맑은 국물을 들이켜니 속이 개운해졌다. 김 회장은 “명태 운반선 성공에서 자신감을 얻어 야심차게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처음 몇 년간은 고전했다”고 말했다. 1통당 어획량도 경쟁 업체들보다 늘 적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회장 눈에 ‘누구든 1등을 하려는 자는 모든 이를 섬기는 자가 돼야 한다’는 책 구절이 눈에 띄었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즉시 간부들을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김 회장은 “앞으로 절대 선원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마라. 그들 때문에 너희도 나도 먹고산다”고 강조했다. 선단을 이끄는 어로장(漁撈長)에게도 ‘일류 대접’을 약속했다. 성과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연간 120억원어치를 잡던 선단이 300억원씩 잡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그의 선단은 늘 1등을 지키고 있다.

“어민 위해 돈 버는 수협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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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이 어로장을 뽑는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는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그는 “고기를 잡는 사람이면 고기잡이에 집중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며 “고기를 잡으며 술집 생각하고 여자 분 냄새 그리워하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고 단언했다. “2011년부터 늘 어획량 1등을 도맡고 있는 어로장은 꿈속에서도 고기 흐름을 쫓는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좋은 어로장의 두 번째 덕목은 강한 용기다. “고기를 잡는 사람이 파도를 겁내면 잡을 수 없어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지난해 회장에 선출되면서 김 회장은 ‘강한 수협, 돈 되는 수산’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지금 수협은 은행을 분리하는 등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빨리 돈을 버는 구조를 갖춰 공적자금을 조기 상환해 외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조직을 만들고 싶어요.”

노량진시장 현대화를 둘러싼 일부 상인과의 갈등에 대해선 아쉬워했다. “계획대로 여기에 복합리조트를 세우고 여의도 63빌딩 등과 연계하면 지금보다 몇 배는 수익을 낼 수 있어요. 상인들과 수협이 힘을 합쳐 함께 파이를 키워야 할 때인데 어느 순간 외부 세력이 등장해 서로를 갈라놨습니다.”

중국 어선 얘기가 나오자 얼굴이 굳어졌다. “수산업은 바다라는 공유지에서의 경제활동인데 지금 대한민국의 바다는 ‘공유지의 비극’을 맞고 있어요.”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목소리까지 높아졌다.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은 단순히 고기 한 마리를 더 잡는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 해양주권은 과연 무엇인지 등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죠. 이제는 여기에 확실하게 답을 해야 할 시점입니다.”

■ 수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수협은행, 12월 분리 출범

수협중앙회는 오는 12월 출범을 목표로 신용사업부문인 수협은행을 분리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과거 농협이 신용·경제사업을 분리해 농협은행을 독립시킨 것과 비슷하다. 올 5월 국회는 수협은행 분리를 골자로 한 수산업협동조합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18일에는 정부가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법령 정비 작업도 마쳤다.

수협은행 분리는 국제결제은행(BIS)의 새로운 은행 자본건전성 기준인 바젤3를 맞추기 위함이다. 수협은행은 정부자금 출연 등으로 인한 자본구조의 특수성 때문에 2013년 12월부터 국내 모든 은행에 도입된 바젤3 적용을 3년간 유예받았다. 수협은행은 1조1581억원에 이르는 공적자금 상환의무를 중앙회로 넘기고, 9000억여원을 정부 지원과 조합원 출자 등으로 추가 조달할 계획이다. 대신 수협은행은 수협중앙회 자회사(지분 100%)가 된다.

■ 노량진수산시장 터줏대감…YS·노무현 전 대통령 즐겨 찾아

김임권 회장의 단골집 미자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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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신축건물 2층에 있는 미자식당은 1971년 수산시장이 서울역 근처 의주로에서 노량진으로 옮겨올 때부터 동고동락한 터줏대감이다. 수산시장에서 손님들이 회 등 수산물을 사오면 테이블과 양념장 등을 제공하는 ‘회양념집’의 원조 격이기도 하다.

사장인 변영애 씨가 1940년대부터 의주로에서 수산시장 직원식당을 운영해 온 이모에게 물려받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미자’는 변씨 이종사촌(이모의 딸)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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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식당은 얼큰한 국물이 일품인 탕으로 특히 유명하다. 매운탕 대구맑은탕 생태탕 아귀탕 민어탕 장어탕 등 계절별로 다양한 탕요리를 선보인다. 재료를 전부 국내산으로 쓰고, 고춧가루는 전북 고창에서 따로 공급받는다.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등 역대 전직 대통령은 물론 이수성·이한동 전 국무총리 등 유명 정치인들이 이곳을 즐겨 찾았다. 회양념집인 만큼 메뉴는 따로 없다. 기본 상차림이 1인당 3000원이고, 매운탕은 2인에 1만원, 대구맑은탕은 한 냄비(4명)에 2만원 선이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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