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지금은 세금 인상 얘기할 때 아니다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에 놓였음을 알리는 불길한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2%대로 주저앉으며 5년 연속 세계 평균을 밑돌았다. 올해 성장 전망치도 계속 하향 수정되고 있다. 민간 연구소들은 내년도 성장률은 올해보다도 낮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60%에 이르는 나라에서 수출도 1년 넘게 감소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전체의 10%를 넘어섰다. 중소기업만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게 아니다. 대기업 계열사도 수십 개가 구조조정에 내몰렸다. ‘빅2’로 불리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각각 갤럭시노트7 조기 단종과 수출 감소로 실적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도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대출 규제 완화와 금리 인하 영향으로 가계부채는 작년 한 해 동안 100조원 이상 늘어 1200조원이 넘었다. 가계부채는 민간소비 증가세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기부동자금도 1000조원에 이르러 부동산 가격과 전·월셋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유독 정치권만은 이 같은 위기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야당은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증세를 요구하며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하자는 법안을 내놓고 있다. 이게 강력한 반대 논리에 부딪히자 이제는 부가세 인상을 들고 나오고 있다. 부가세율 상향 조정은 여당 일각에서도 동조하는 모습이다.

경기 회복을 위해 삭감해도 모자랄 판에 지금이 과연 세금 인상을 논할 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빈부를 막론하고 동일 세율이 적용되는 부가세 인상은 정치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경제민주화에도 역행한다. 이미 세금은 충분히 걷고 있다. 경기는 부진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수 풍년이 예상된다. 올해 8월까지 지난해보다 20조원의 세금이 더 걷혔다. 지금은 세금을 인상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걷힌 세금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지 궁리할 때다.

이미 실행하고 있는 복지 프로그램을 축소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복지전달체계를 단순화해 예산을 절약한다면 적자재정의 걱정을 얼마든지 덜 수 있다. 현재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수당과 서비스 항목은 알려진 것만도 총 350개, 지방자치단체 서비스까지 포함하면 5900개가 넘는다. 중복되는 사업도 많고 부정수급으로 새는 돈도 적지 않다. 수혜 대상자는 전문가로부터 컨설팅이라도 받아야 제대로 찾아 먹을 수 있을 지경이다. 이렇게 전달체계가 복잡한 결과 지원금 못지않게 많은 돈이 전달 자체에 사용된다.

정치권은 복지예산 타령에 앞서 중복사업을 구조조정하는 한편 ‘중간상인’만 살찌우는 전달체계를 단순화, 효율화할 수 있게 법 개정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지프로그램이 지금과 같이 방만하게 운영되게 방치하느니 차라리 모든 프로그램을 철폐하고 각자 알아서 가장 적절하게 돈을 사용하게 기본소득제를 채택하는 것도 고려함 직하다. 복지예산이 어림잡아 1년에 100조원이라면 국민 한 사람당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년에 200만원씩 나눠줄 수 있다.

그래도 세금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최고세율을 인상하기에 앞서 먼저 소득이 있는 사람은 얼마라도 세금을 내게 해야 한다. 현재 근로소득자의 48%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전체 소득의 10.8%를 차지하는 상위 소득자 1%가 전체 소득세의 42.8%를 담당하고 있다. 법인소득세는 더 집중돼 있다. 2012년 통계에 의하면 전체 기업의 46%는 법인세를 내지 않았다. 전체 기업의 0.62%가 전체 법인세수 40조원의 약 83%를 부담했다. 이렇게 세금이 극소수에게만 집중되면 도덕적 해이는 필연이다. 대다수 국민은 자신이 세금을 내지 않으니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죽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무상복지를 원하게 된다. 또 표만 의식하는 정치인은 증세의 부담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혜택은 널리 확산되니까 무책임하게 무상복지 제공에 앞장서게 된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정치경제학 교수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