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위기 앞에서
경주에서 일어난 규모 5.8의 지진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너무나 큰 것 같다. 2011년 일본 동북부 대지진 때만 해도 남의 일이었는데 통신 두절, 고층 아파트의 붕괴 위험, 긴급 대피 과정의 혼란 등 급박한 위기 상황이 눈앞의 현실이 된 것이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핵 개발에 나섰을 때만 해도 세계는 물론 우리도 북한이 상투적으로 취하는 벼랑 끝 전술의 일환으로만 생각했고, 북한이 핵무기 개발, 핵탄두 경량화와 미사일 탑재 등 실제 공격용 핵무기로 개발하는 것은 요원한 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북한 정권이 자행한 5차 핵실험은 문외한의 눈에도 현실적 위험으로 느껴진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미사일, 핵탄두 경량화 등이 공갈이나 협박으로만 치부할 수준이 아니다.

이 와중에 지금의 우리를 보면 정부와 국회 등 사회주체들 간, 계층 간, 노사 간, 세대 간 불신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그 벽의 높이와 마음의 거리를 이대로 둬도 될 것인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믿음을 저버린 인간관계나 불신의 사회는 안팎으로부터 위기를 자초하고 그 비극적 결말은 세계 역사와 수많은 고전들, 문학작품, 희곡 등에서 너무나 많이 볼 수 있다.

기적과도 같았던 충무공의 명량대첩은 단순히 전술이나 참전자들의 애국심만으로 이뤄진 게 아닐 것이다. 12척의 배로 30배나 되는 적을 상대해 승리로 이끈 비결은 전투의 직접 참가자 사이의 신뢰에 일반 백성들의 믿음까지 보태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분열된 국론을 통합해 정책 추진력을 발휘해야 할 큰 책무를 지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부 당국이다. 그러나 직역, 지역, 계층,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뒤로 하고 국가 역량의 총화를 찾는 결집된 민심이 더해져야 중대한 위기 앞에 선 우리의 생존권을 지킬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우리 안에 신뢰가 배태돼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지금쯤 다시 돌아봐야 하겠다.

북한의 막무가내식 만행 앞에 미국의 대북 정책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 정세는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국민 모두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각계 전문가들의 깊은 통찰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다양한 견해와 대책들이 있다 해도 거국적인 단합을 대신할 수 있는 묘안은 없다.

서로가 믿고 의지해 함께 힘을 모으면 각자의 역량을 단순 합산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상승 효과가 나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 내부에 난마처럼 얽힌 불신에서 벗어나 합리적 대화로, 획기적 대비책으로 통합된 국민 역량을 세워야 할 시기라는 절실한 통찰을 누가 외면할 것인가.

조영곤 < 화우 대표변호사 ykoncho@yoon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