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한경과의 인터뷰(10월18일자 A6면)에서 대선주자들이 쏟아내는 온갖 성장론에 ‘친(親)기업 아닌 것은 다 말장난’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더불어민주당이 연초 ‘더불어 성장론’을 발표한 이래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성장담론이 난무하는 데 대한 따끔한 일침이었다.

김 전 지사의 탄식처럼 국민성장 소득주도성장 공정성장 동반성장 복지성장 공생성장 등 자고 나면 새 성장론이 등장하고 있다. 어떤 게 누구의 구호인지 분간조차 힘들 정도다. 하나같이 비슷해 보이는 내용이지만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불가다. 찬찬히 들여다봐도 뭘 어떻게 해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골고루 나눠가지는 데만 집중하고 경제성장에는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의식한 말의 포장이요 언어의 유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법을 빌린다면 온갖 장식어를 달고 있는 성장론은 위장된 분배론일 뿐이다.

쏟아지는 성장담론들이 대부분 시장에 대한 오해와 허구적 사실에 바탕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성장과 분배의 정의를 조화시켜야 한다’던 노무현 정부부터가 실패의 연속이었다. 당시는 골디락스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글로벌 호황기였지만 한국만 철저히 소외됐다. 세계 평균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이라는 초유의 현상에 시달렸다. 분배에 치중했지만, 대표적 분배지수인 지니계수가 급격히 악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선의로 포장된 엉터리 처방의 결과는 언제나 참혹하다. 노동자 보호라는 명분에 집착한 각종 입법들이 결국 정규직 기득권만 강화하고, 청년을 실업과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성장 주체인 기업의 발을 묶고, 분노를 앞세운 단선적 슬로건들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국부(國富)는 결코 투표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국부의 원천은 오직 국민의 눈물과 땀이다. 세계가 기적으로 부르는 한국의 성장신화도 우리가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다. 대중에 영합해 분노를 부추기고 장밋빛 구호를 앞세워 얻을 수 있는 성장은 없다. 땀을 흘리지 않고도 잘살 수 있다는 그 모든 성장이론은 달콤한 독약이다, 가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