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호 이엘티 부사장(오른쪽)이 코브라도르섬 현지 전력회사 직원에게 태양광 패널 점검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오형주 기자
전영호 이엘티 부사장(오른쪽)이 코브라도르섬 현지 전력회사 직원에게 태양광 패널 점검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오형주 기자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육로를 거쳐 배를 12시간 동안 두 번 갈아탄 끝에 도착한 코브라도르섬. 서울 여의도보다 작은 면적(2.64㎢)의 이 섬은 세부·보라카이 등 필리핀의 여느 휴양지와 마찬가지로 에메랄드빛 바다에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췄다.

그러나 전기 등 문명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 주민들은 대부분 농·어업이나 소규모 대리석 가공업 등에 종사해왔다. 주민들은 폭풍우 속에 물고기를 잡고, 선풍기도 없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야 했다.

워낙 주변 수심이 깊어 육지로부터 전력을 이어주는 해저케이블 설치가 불가능하다 보니 오랜 기간 ‘전력 오지’로 남아 있었다. 지난 2월까지도 전기가 하루 6시간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전체 가구(244가구)의 절반이 넘는 138가구는 아예 전기를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섬의 운명이 달라진 것은 지난 3월 한국의 도움으로 태양광 발전 시스템이 설치되고 나서다.

◆‘전력 오지’를 구한 태양광 기술

"한국 태양광 발전 덕에 24시간 전기 들어와요"
필리핀 정부는 수년 전부터 코브라도르섬에 전력공급 사업을 추진했지만 수력·풍력 등 대부분 방안이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나는 등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현지 한국 에너지기업의 제안으로 아시아개발은행(ADB), 한국에너지공단 등이 참여하는 태양광 시스템 구축 사업을 선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ADB, 필리핀 국가전력청은 지난해 8월 코브라도르섬에 대한 국제공동 프로젝트 협약을 맺었다. 총 사업비 5억원 중 3억원을 한국 측에서 부담하되,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장비 일체를 맥스컴과 LG화학 등 한국산을 사용하는 조건이었다.

◆필리핀 에너지자립섬 첫 사례

협약 8개월 만인 지난 3월 태양광 시스템이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섬만 200곳이 넘는 필리핀에서 외부 전력공급이 필요 없는 태양광 기반 에너지자립섬이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75㎾ 리튬이온 배터리가 설치된 ESS를 통해 낮과 밤 모두 태양광 전기 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낮에 초과 생산된 태양광 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밤에 쓰는 구조다.

섬 주민들은 저렴하면서 친환경적인 전기를 24시간 누릴 수 있게 됐다. 당장 수산물의 냉동저장이 가능해지면서 어민들의 수입이 90% 이상 늘었다. 태풍경보 등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위험 부담도 크게 줄었다. 학교에는 선풍기와 컴퓨터 등이 처음 설치돼 교육환경이 대폭 개선됐다. 관광 등 새로운 사업의 기회도 열렸다.

◆한국 에너지기술 국제적 이목

코브라도르섬 사례는 선진국의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개발도상국 주민을 위해 성공적으로 적용됐다는 점에서 국제적 이목을 끌고 있다. 소니아 산디에고 필리핀 국가전력청 차장은 “이번 프로젝트가 향후 필리핀 에너지정책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결과물로 활용될 계획”이라고 했다. 리처드 볼트 ADB 필리핀 담당 디렉터는 “오지 주민들에게 적절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는 ADB의 사업 원칙과 목표에 완벽히 들어맞았다”고 평가했다.

추가적인 사업 추진 가능성도 열렸다. 현지 한국 에너지 업체인 이엘티 전영호 부사장은 “당장 지난 3월 준공식 때부터 독일 등에서 5~6개 에너지 기업이 찾아와 섬을 둘러봤다”며 “동티모르, 파푸아뉴기니 등지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가 수출 새 먹거리”

산업부는 이런 맞춤형 친환경에너지타운 사업을 세계 곳곳에서 추진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폐광 및 폐기물 매립지를 활용해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과 열을 공급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전력이 닿지 않는 오지에 전력을 공급하는 에너지자립형 모델 시범사업에 나섰다. 몽골에서는 ‘날라흐’ 폐광지역의 환경오염과 안전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도시재생형 모델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우태희 산업부 2차관은 “코브라도르섬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경험을 축적하고 사업성을 검증하는 발판이 됐다”며 “상대국의 환경·전력 문제 해결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한국 기업의 해외사업을 위한 트랙 레코드를 축적해 국산 에너지신산업을 새로운 ‘수출 먹거리’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코브라도르(필리핀)=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