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중국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다면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올리버 하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벵트 홀름스트룀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에게 돌아갔다. 계약이론 발전에 기여한 공로다. 다양한 계약과 제도 간의 역학관계를 분석하는 이론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언뜻 보면 이 상은 중국에는 먼 나라 얘기다. 역대 수상자의 3분의 2가 미국인인 데다 대부분 보수성향 시장경제론자들이라는 이유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지 못한 것은 13억 인구 대국 중국이 자력으로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한 것에 견줄 만하다.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 최근 몇몇 상황 전개는 중국이 노벨 경제학상에서 요원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수상자 선정 트렌드를 보자. 이제까지 이 상은 신고전학파와 거시경제학자들의 전유물처럼 보였다. 이들의 연구 성과로는 날로 복잡하고 중요해지는 경제 현상과 기업 행위를 분석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신장섭 싱가포르대 경제학과 교수의 지적처럼 ‘기업 없는 경제학의 비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론 따로 현실 따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올해 경제학상은 대전환을 했다. 미시경제학자인 하트와 홀름스트룀은 제도경제학자다. 신고전학파 주류 경제학은 기업을 생산기술의 하나로만 보며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박스로 간주한다. 두 수상자는 기업을 계약이론의 핵심 주제로 삼았다. 중국의 현주소와 연결되는 대목이다. 지금 중국 경제학계의 최대 화두는 구조 개혁의 지속 가능성이다. 국유기업 개혁, 금융시장 개혁, 정부기구 개혁 등이 해결과제다. 중국 학계에선 하트와 홀름스트룀의 연구가 중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며 이 분야 연구에 더욱 매진할 움직임이다. 앞으로 노벨 경제학상이 올해의 원칙을 유지한다면 중국은 수상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는 의미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중국은 계획경제체제여서 노벨상급 연구 성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 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필자가 상하이 푸단(復旦)대에서 기업관리학 박사 공부를 할 때 중국의 붉은 자본주의를 배우지 않았다. 지도교수는 늘 미국과 유럽의 최신 연구 성과와 상하이 주재 다국적기업 지역본부의 사례를 들려줬다. 중국 학계가 동서양 경제학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에는 서구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제 현상이 무수히 많다. 과거 중국 경제가 초라했을 때는 경제학 연구의 핵심 과제가 되지 않았지만 경제 규모 세계 2위, 수출 1위에 이어 곧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중국 경제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분석 틀만으로도 노벨 경제학상에 근접할 것이다. 외적 요인도 있다. ‘중국판 다보스포럼’이라 불리는 보아오포럼은 이미 세계적인 학자들의 포럼으로 급성장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은 중국에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한다. 중국에 긍정적인 요인들이다.

일단 중국 학자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되면 큰 변화가 올 것이다.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은 개인의 영광이지만 경제학상은 다르다. 연구의 흐름뿐 아니라 각국의 정책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국의 경제 파워는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는 경제학 교과서 다시 쓰기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중국이 표방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지금부터라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그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 아니라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자.

박한진 < KOTRA 타이베이무역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