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GC 오션코스 18번홀 그린. 앨리슨 리(미국)의 마지막 어프로치 샷이 홀컵을 향해 똑바로 굴러갔다. 숨을 죽이고 공의 궤적을 지켜보던 갤러리들 사이에서 “좋아. 들어간다!”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홀컵으로 빨려들어갈 듯하던 공은 야속하게도 홀컵 바로 왼쪽 3㎝ 옆에 멈추고 말았다. 재역전 드라마를 기대한 갤러리들이 장탄식을 토해냈다. 어머니 나라에서의 첫 승을 올리고 싶어하던 앨리슨 리의 꿈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경기를 끝내는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던 앨리슨 리는 그린을 걸어 나가며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파만 했어도 우승인데…

< “아깝다” > 앨리슨 리가 연장 첫 홀에서 시도한 회심의 어프로치 샷이 홀컵 바로 옆에 멈춰서면서 버디에 실패하자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다. KEB하나은행챔피언십 제공
< “아깝다” > 앨리슨 리가 연장 첫 홀에서 시도한 회심의 어프로치 샷이 홀컵 바로 옆에 멈춰서면서 버디에 실패하자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다. KEB하나은행챔피언십 제공
한국계 프로 골퍼 앨리슨 리(한국명 이화현)가 이날 한국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EB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3타 차 단독 선두로 마지막 날 경기에 나서 첫 승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10번홀까지 버디만 6개를 쓸어담으며 5타 차를 뒤집은 카를로타 시간다(25·스페인)의 기세에 눌려 꿈을 이루지 못했다.

티샷과 퍼트가 모두 흔들렸다. 드라이버 티샷이 네 번이나 러프로 들어갔고, 그린 적중률이 50%에 불과했다. 3라운드에서 4연속 버디를 기록했던 퍼트도 짧은 거리에서 미세하게 비껴갔다. 10번홀까지 보기만 4개가 터져 나왔다. 생애 첫 승에 대한 부담감이 그만큼 컸다.

그럼에도 마지막 날 18번홀에서 파만 잡았어도 우승컵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첫 승 경쟁을 벌이던 시간다 역시 부담감에 실수를 연발했기 때문이다. 18번홀에선 짧은 퍼트 실패로 보기까지 범하며 앨리슨 리에게 단독 선두를 내줬다.

하지만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앨리슨 리의 세 번째 어프로치 샷이 그린 앞 둔덕에 맞고 워터해저드로 들어간 것. 통한의 보기였다. 이날 3타를 잃은 앨리슨 리는 최종 합계 10언더파 동타로 연장전에 끌려갔고, 18번홀에서 열린 첫 번째 연장홀에서 버디를 노린 회심의 칩샷 어프로치가 홀컵 옆에 멈추며 버디를 잡은 시간다에게 첫 우승컵을 넘겨주고 말았다. 미국 UCLA 4학년에 재학하며 학업과 골프를 병행해 온 앨리슨 리는 차세대 LPGA 투어 스타로 강한 인상을 심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카를로타 시간다가 16일 KEB하나은행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카를로타 시간다가 16일 KEB하나은행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앨리슨 리는 아버지(이성일 씨)가 아일랜드계 한국인, 어머니(김성신 씨)가 토종 한국인이다. 외할아버지 김홍 씨 (80)도 이날 경기장에 나와 외손녀 경기를 지켜봤다.

시간다는 이번 우승으로 2013년부터 자신의 발목을 잡아 온 ‘한국 콤플렉스’를 털어냈다. 2012년 LPGA에 데뷔한 그는 2013년에 노스텍사스슛아웃에서 잡은 첫 승 기회를 박인비(28·KB금융그룹)에게 역전패당하며 날려버렸다.

2014년에는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 뉴질랜드 동포 리디아 고와 연장 4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결국 트로피를 내주고 말았다. 지난 6월 마이어클래식에서는 김세영(23·미래에셋)에게 연장패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시간다는 우승 인터뷰에서 “2년 전 세상을 뜬 코치에게 우승컵을 바친다”며 눈물을 흘렸다.

◆박성현-전인지 ‘흥행카드’ 입증

대회 나흘간 수천 명의 구름 갤러리를 몰고 다닌 박성현(23·넵스)과 전인지(22·하이트진로)는 최종 합계 4언더파로 공동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박성현은 13번홀(파5)에서 나온 더블 보기에 발목이 잡히면서 2타를 잃었다. 박성현은 전날 3라운드에서도 파4를 기록한 14번, 15번홀에서 두 개의 더블 보기를 범해 13~15번홀에서만 이틀 동안 6타를 잃었다. 투어 초청선수로 출전해 쌓은 상금으로 이미 LPGA 출전 카드를 손에 쥔 박성현은 국내에서 열린 LPGA 투어를 제패해 당당하게 입성하려 했던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LPGA 투어 직진출을 노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선수 중에서는 김민선(21·CJ오쇼핑)이 한 타를 덜어내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펑산산(중국)과 공동 3위(8언더파)에 자리해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아마추어 괴물 골퍼 성은정(영파여고 2)도 최종 합계 3언더파를 쳐 프로골프계에서 통할 수 있는 잠재력을 확인했다.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는 3오버파 공동 51위를 기록해 최근의 부진을 이어갔다.

영종도=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