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계가 ‘수주절벽’에서 탈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국내 주요 조선사는 최근 들어 연일 수주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동안 뚝 끊겼던 해양플랜트 수주도 재개되는 모습이다. 기대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 조선업계를 위기에 빠뜨린 저가 수주 관행이 다시 시작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국 조선업계 '수주절벽' 탈출하나
◆'수주 제로'에서 '연말 대박'으로

올 상반기와 하반기의 표정이 가장 다른 조선사는 삼성중공업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0월 이후 약 1년간 전혀 수주하지 못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다른 조선사도 수주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종종 계약을 따냈다. ‘빅3’에 들지 못하는 중소형 조선사들도 꾸준히 수주했다. 조선업계 안팎에서 “이러다가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보다 더 빨리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반전의 드라마는 지난달 말 시작됐다. 유럽 선사와 4200억원 규모의 18만㎥급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2척 수주계약을 체결한 게 그 시작이었다. 2주 뒤에는 유조선 수주를 따냈다. 노르웨이 비켄과 11만3000DWT(재화중량톤)급 유조선 2척 및 5만7000DWT급 유조선 2척 등 총 4척을 건조하는 계약을 맺었다.

체결이 예고된 수주계약도 많다. 삼성중공업은 영국 BP가 발주한 반(半)잠수식 원유생산설비(semi-FPU) 수주를 사실상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빅3와 중국, 싱가포르 조선사들이 입찰에 참여했지만 삼성중공업이 최종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계약금은 10억~15억달러가 될 전망이다. 최종 계약은 내년 초 체결된다.

인도 국영가스공사 게일과는 LNG운반선 계약 체결을 단독으로 진행하고 있다. 게일이 최종 투자 결정을 내리면 LNG운반선 4~6척을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중공업도 하반기부터 수주 실적을 꾸준히 쌓아가고 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두 달에 한 번꼴로 수주했지만, 7월 이후에는 매월 수주 기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도 유조선 2척을 수주해 현대삼호중공업에 건조를 맡겼다.

◆해양플랜트 발주 기지개

내년 초부터는 신규 해양플랜트 프로젝트 발주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로열더치셸의 멕시코만 반잠수식 플랫폼 건설 프로젝트인 ‘비토 프로젝트’가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셸은 국제유가 하락 여파로 한동안 개발 일정을 전면 중단했다. 하지만 최근 프로젝트를 재개하기로 결정하고 조선소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밖에 미국 애너다코석유는 멕시코만 지역의 해상 유전을 개발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코발트 인터내셔널 에너지도 부유식 플랫폼을 활용한 해상 유전 개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오일 메이저들이 심해에서 원유를 채취할수록 손해라고 판단해 해양플랜트 발주를 1년 넘게 자제해왔다”며 “최근 유가가 조금씩 오르고 있는 데다 심해 원유 채취 원가를 줄이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해양플랜트 발주를 재개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기대의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저가 수주를 하느니 차라리 수주를 포기하겠다”던 조선사들이 선박 및 해양플랜트 가격을 일부 낮추는 방식으로 수주 계약을 따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 해양플랜트 프로젝트에는 조선 빅3가 모두 설계부터 시공까지 맡을 수 있다고 제안해 발주사가 오히려 이를 말리는 일도 있었다”며 “해양플랜트를 일괄 수주했다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놓고도 여전히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안대규/정지은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