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20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일정 파행, 호통과 막말, 무더기 증인 채택 등 구태를 반복하며 ‘사상 최악’이라는 혹평 속에 막을 내리고 있다. 정무·법제사법·운영위원회 등이 아직 남아 있지만 미르재단 의혹과 우병우 청와대 정무수석의 출석 여부 등을 놓고 정쟁의 대미를 장식할 가능성이 높다.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모든 정책이슈를 집어삼켜 “파행으로 시작해 파행으로 끝났다”(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평가가 나온다. 15대 국회부터 국감을 평가해 온 시민단체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이번 국감에 처음으로 ‘F학점’을 줬다. ‘국감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이유다. “이런 국감을 뭐하러 하느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이콧·막말·호통에 진흙탕 싸움…또 불거진 '국감 무용론'
이번 국감은 시작부터 파행했다. 국감 개시 직전 터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의 야당 단독 처리로 새누리당이 국감 참여를 거부하면서 첫 1주일을 날렸다. 여야는 국감을 오는 19일까지 나흘 연장하고 정상화했지만 ‘몰아치기식 진행’이 극에 달했다. 강원·경북·대전·세종 등 일부 피감기관은 시간 부족을 이유로 국감을 아예 건너뛰어 수개월 전부터 자료를 준비해 온 공무원들을 허탈하게 했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6~7일 16개 시·도 교육청 국감을 열었지만 일선 교육현장 문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미르재단 의혹을 둘러싼 증인 채택 공방으로 날을 샜다. 낮에 파행하고 밤에 감사한다는 뜻의 ‘주파야감(晝跛夜監)’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호통과 막말, 무책임한 폭로도 여전했다.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지난달 30일 화장실을 가며 “새파랗게 젊은 것들에게 수모를 당한다”고 의원들을 겨냥했고,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치매 증세’ 운운하며 인신공격성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어기구 더민주 의원은 최동규 특허청장 아들의 LIG넥스원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했다가 5시간 만에 “동명이인을 착각했다”고 사과했다. 이은재 새누리당 의원이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벌인 ‘MS오피스 설전’은 인터넷에서 십자포화를 맞으면서 정치 혐오증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반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에게 “국회를 능멸했다”며 호통을 치거나, “제품 가격을 내리겠다고 약속하라”며 압박하는 의원도 있었다. 20대 국회 첫 국감이 여야의 진흙탕 싸움으로 귀결되면서 남은 건 윤리특별위원회에 쌓인 제소장뿐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지금까지 제소된 의원은 정세균 국회의장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한선교·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등 네 명이다.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국감 시기를 못박고 몰아서 하니 9~10월에 국회의원은 한 건을 터뜨리기 위해 무리하게 된다”며 “국감은 축소하고 상시 청문회를 활성화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국감을 연중으로 나눠 기관별로 깊이 있게 열자는 답은 이미 나와 있다”며 “백화점식이고 수박 겉핥기식인 국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민생은 실종되고 오직 대선을 겨냥한 정쟁만 난무했다는 국민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겠다”면서도 야당의 부풀리기식 의혹 제기를 문제 삼았다.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은 “새누리당의 청와대 사수작전에 가로막혀 ‘맹탕국감’ ‘방탄국감’이 되고 말았다”고 여당 탓을 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16일 기자회견에서 “일각에선 최악의 국감이라 하지만 더민주는 굉장히 알차고 정책대안을 제시한 국감이었다고 평가한다”고 민심과 동떨어진 얘기를 했다.

임현우/김기만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