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능력중심사회로 가려면 직업계 고등학교 키워야
“특성화고에서 도제교육을 받는 것이 너무 즐거워요. 2학년부터 학교의 이론교육과 함께 현장 경험을 쌓으니 취업 걱정도 없고 금형 명장이 되고 싶다는 목표도 확실해졌어요.” 올봄, 인천의 한 특성화고를 방문한 자리에서 어느 학생이 밝힌 소감이다. 올해 직업계 고등학교 취업률이 최근 발표됐다. 불과 7년 전인 2009년 17%에 불과했으나 그간 연속 상승해 올해에는 47%에 달했다. 특성화고·마이스터 등 직업계고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흔히 공고, 상고라고 불리던 직업계고는, 꿈과 능력이 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충실한 직업교육을 받고 남보다 빨리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경로로 인식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능력보다는 학력과 스펙이 중시되는 사회 풍조가 확산되면서 직업계고는 위기를 맞았다. 인문계고뿐 아니라 직업계고 졸업생들도 취업보다 대학진학을 더 많이 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2009년 직업계고 졸업생의 대학진학률은 74%에 이르기도 했다. 올해 대학진학률은 34%다.

직업계고가 다행히 위기를 벗어나고 있는 것은 사회 각계각층의 노력 덕분이라 판단된다. 한편으로 정부와 기업이 고졸 취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성을 쏟고, 다른 한편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이 개선되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국가직무능력표준(NCS)과 일학습병행제가 특성화고에 도입되고 있는데, 이런 변화 역시 직업교육을 한걸음 더 발돋움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NCS는 산업계가 만든 새로운 교육·훈련 커리큘럼인데, 이를 바탕으로 전국 547개 직업계고의 교육과정이 개편됐다. 고교단계 일학습병행제(산학일체형 도제학교)는 고교 2학년부터 기업과 학교를 오가며 도제식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올해 60개교에서 내년에는 200여개교로 확대된다.

NCS와 일학습병행제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이 산업현장에 매우 가깝게 밀착되도록 함으로써 직업교육의 전기(轉機)를 마련할 것이다. 이제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현장에서 제 몫을 톡톡히 담당하는 인재로 거듭나게 될 것이고, 이들을 채용한 기업의 경쟁력도 강화될 것이며, 능력중심 사회의 구현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

이런 변화가 직업계고에 잘 정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재정 투자를 확대해 학교 시설과 실습장비를 현대화해야 한다. 또 성큼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전공을 발굴하고 학과개편 등 운영시스템도 바꾸어야 한다. 교사들도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키우고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현장 시계는 과거에 멈춰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제도만 도입한다고 해서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물론 학교 바깥의 변화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규제개혁과 중소기업 지원체계의 개편을 통해 중소기업 경쟁력을 키움으로써 전문계고 졸업생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우수 학생들이 직업계고로 올 것이다.

이와 함께 노동개혁을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우리 경제의 일자리 창출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기존의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쉽게 진입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이 유연해야 한다. 각종 기득권 보호장치가 가득한 상황에서는 청년뿐 아니라 경력단절여성이나 장년 퇴직자와 같은 취약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 또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도 어렵다. 우리 청년들이 어딜 가서라도 능력에 따라 대우받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도록, 우리 사회 각 부문이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고영선 < 고용노동부 차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