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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수록 대접받는 시대…요즘 대세는 '호모 루덴스'

입력 2016-10-14 17:28:42 | 수정 2016-10-15 01:24:09 | 지면정보 2016-10-15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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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전통적 전문가의 메시지보다 솔직함 담긴 콘텐츠에 대중 열광
SNS 타고 영향력 갈수록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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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 정말 강하네. 조심히 접근해야 해. 앗, 다행이다. 잡았다, 잡았어.”

큰 게임 화면 아래 한 사람이 보인다. 그는 게임을 하면서 중계도 한다. 적을 쓰러뜨리자 방송을 보던 이들의 채팅방도 들썩인다. ‘BJ(브로드재키)계의 유재석’으로 불리는 대도서관(사진)은 이렇게 인터넷 방송을 진행한다. 그의 유튜브 방송 구독자는 129만명이 넘는다. 그는 원래 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한 고졸 출신 ‘나동현 대리’였다. 지금은 게임업체들이 그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게임을 소개해달라고 몇천만원을 제시하는 회사도 있다. 그가 게임에 참여하며 생중계하면 매출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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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시대다. 자기만의 취미를 갖고 잘 노는 사람이 트렌드를 만든다는 의미다. 학위, 자격증이 없어도 된다. 더 열심히 즐긴다는 이유만으로도 대우를 받는다. 전문가와 일반인의 경계가 사라지고, 누구나 블로그·유튜브 등을 통해 직접 대중과 만나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일종의 ‘전문가 놀이’다. 노는 전문가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콘텐츠 제작사, 일반 기업은 이들을 통해 대중의 반응을 살피고 새로운 전략을 세운다.

네덜란드 문화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에 몰두하며 자연스럽게 창의성과 상상력을 갖추게 된 유희적 인간을 호모 루덴스라 이름했다. 하위징아는 르네상스 시대도 호모 루덴스가 만들었다고 봤다.

한국은 좀 늦었다. ‘잘 논다’는 것은 장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지식으로 무장하고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호모 사피엔스’에 항상 밀렸다. 전문가의 자리도 그들의 차지였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이런 흐름을 바꿔놨다. 방송에 있던 커뮤니케이션 권력이 블로그와 유튜브 등으로 넘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구전(口傳) 전통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가 들려주는 일방적인 거대 담론보다 소소한 일상의 감동과 스토리가 더 빨리 전파된다. 블로그 하나로 ‘집방(집꾸미기 방송)’ 열풍을 이끈 제이쓴(본명 연제승)을 보자.

그는 자신의 자취방을 꾸미는 데 열중하는 대학생이었다. 인테리어 노하우를 블로그에 올렸을 뿐이다. 난리가 났다. 팁을 묻는 사람이 늘었다. 그러나 댓글과 쪽지로 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직접 찾아가 무보수로 집을 함께 꾸미기 시작했다. 블로그 누적 방문자 수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지금은 전문가 대접을 받고 있다. JTBC ‘헌집줄게 새집다오’에 출연해 집방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호모 루덴스의 무엇에 열광하는 걸까. 한마디로 ‘체험’이다. 공급자인 제작사나 기업이 전하는 메시지에 대중은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간접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모 루덴스는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전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더 잘 먹힌다.

노벨상의 계절이다. 지난달 22일에는 또 다른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개성을 지닌 전형적인 호모 루덴스들에게 주는 ‘이그노벨상’이다. 올해엔 죽은 파리를 수집해 책을 쓴 사람, 쥐에게 바지를 입혀본 사람 등이 수상했다. 비전문가들의 우스꽝스런 장난이라고 치부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그노벨상 수상자 중 노벨상을 받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놀이를 유독 좋아했던 일반인이 모두가 인정하는 전문가가 되는 것처럼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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