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13일 향년 88세로 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도 방콕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국왕의 젊은 시절 사진이 담긴 액자를 들고 목놓아 울고 있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6월9일 즉위해 이날까지 70여년간 19차례의 쿠데타를 겪으면서도 군부와 민주화 세력의 갈등을 조정하고 농촌 개발정책을 주도해 국민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방콕EPA연합뉴스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13일 향년 88세로 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도 방콕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국왕의 젊은 시절 사진이 담긴 액자를 들고 목놓아 울고 있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6월9일 즉위해 이날까지 70여년간 19차례의 쿠데타를 겪으면서도 군부와 민주화 세력의 갈등을 조정하고 농촌 개발정책을 주도해 국민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방콕EPA연합뉴스
태국 통합의 상징인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13일 향년 88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평소 ‘살아 있는 신(神)’으로 불릴 만큼 국민으로부터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푸미폰 국왕이 세상을 떠나자 정권 민간 이양과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왕실 사무국은 푸미폰 국왕이 이날 오후 3시52분(현지시간) 영면했다고 밝혔다. 고령인 푸미폰 국왕은 2009년부터 저혈압, 폐렴, 뇌수종(腦水腫) 등 각종 질환으로 여러 차례 입·퇴원을 반복해왔다. 올초 병원에서 치료 중 휠체어를 탄 채 왕궁을 둘러보는 모습이 포착된 이후로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지난 12일 혈액검사 결과 감염이 확인되고, 간 기능이 악화되는 등 병세가 위중해지자 인공호흡기와 함께 혈액·혈장투석(CRRT) 치료를 받아왔다.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이날 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했다. 지방 행정조직에는 근무지에서 대기하라는 총리 명의의 서한이 발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쁘라윳 총리는 국영 뉴스채널을 통해 와치라롱껀 왕세자(64)가 헌법에 따라 태국의 새 국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왕위 승계 절차를 밟을 예정이며, 왕세자가 후계자라는 사실을 국가입법회의(NLA)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미폰 국왕은 1972년 유일한 왕자이자 장손인 와치라롱껀을 왕세자이자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다.

군부가 주도하는 과도의회인 NLA는 1년간의 추모 기간을 선포했다. 앞으로 30일 동안 오락활동을 자제하고 검은 옷을 입을 것을 국민에게 촉구했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6월9일부터 이날까지 70여년간 왕위를 유지해왔다. 그는 농촌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농촌개발사업과 저소득층 복지사업을 주도했다. 국민으로부터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을 만큼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

재위한 70년간 10차례의 쿠데타를 겪으면서도 국가의 통합을 주도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군부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과 충돌한 1973년엔 군부정권을 몰아내는 데 기여했다. 1992년엔 군부가 의회를 해산하고 유혈사태를 일으키자 쿠데타로 집권한 수찐다 크라쁘라윤 총리를 왕궁에 꿇어앉혀 군부를 축출하기도 했다.

군부와 결탁해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푸미폰 국왕은 2006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탁신 친나왓 총리를 몰아낸 군부의 쿠데타를 승인했고, 2014년에도 탁신 전 총리의 동생인 잉락 친나왓 총리 정권을 뒤엎은 쿠데타를 용인했다.

군부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푸미폰 국왕이 서거하면서 태국 정국이 요동칠 전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군부가 정치적 안정의 필요성을 들어 민정 이양을 늦출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총리는 내년 말 총선을 치르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지난 8월 국민투표에서 민정 이양 기간에 군부의 의회 장악을 명문화한 개헌안이 가결된 데다 선거 시기를 수차례 지연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군부가 집권 연장을 시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와치라롱껀 왕세자가 국민의 신망이 두텁지 않다는 점도 정국 혼란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이혼과 결혼을 세 차례 반복했고 문란한 사생활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도박을 즐기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와치라롱껀 왕세자는 탁신 전 총리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