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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혁신의 아이콘' 잡스는 왜 시장조사를 안 했을까

입력 2016-10-13 18:21:47 | 수정 2016-10-14 02:48:35 | 지면정보 2016-10-14 A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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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권력

조지 길더 지음 / 윤영호 옮김 / 세종연구원 / 448쪽 / 1만2000원

조지 길더의 '엔트로피 경제학'
혁신의 속성은 예측불가능…무질서 뜻하는 엔트로피 높아
신시장 만드는 창조적 기업가, 지속적 경제성장 이끌어
정부 역할은 소유권 보장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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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내가 만약 고객 의견에만 귀를 기울였다면 (자동차가 아니라) 더 빨리 달리는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장 조사를 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을 보여줄 때까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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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와 잡스 같은 기업가들은 조지 길더(77)가 《지식과 권력》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주역이다. 그는 ‘디지털의 아버지’라 불리는 클로드 섀넌의 정보 이론을 경제 전반에 적용한 경제학을 내놨다. 이른바 ‘자본주의 정보 이론’이다.

저자에 따르면 정보가 자유롭고 널리 유통되는 역동적인 시장이 경제 발전을 이끈다. 역동적인 시장은 확실한 시장 수요나 정부의 지시 또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사업 계획,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기업가들이 창출한다. 경제의 성장과 발전, 일자리와 복지, 시장과 수요는 모두 이런 기업가들의 창조에서 비롯된다. 인구 증가, 자본 축적, 경제적 효율, 심지어 과학적 진보보다 기업가적 창조가 더 중요하다.

‘길더의 경제학’을 이해하려면 그의 경력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닉슨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1981년 레이건 정부의 감세·규제 철폐 정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부와 빈곤》을 출간해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이 책으로 길더는 ‘공급 중심주의 경제학’을 대표하는 이론가이자 ‘레이건이 가장 많이 인용한 현존 작가’가 됐다.

그는 40대에 돌연 테크놀로지 분야로 방향을 전환한다. 캘리포니아공대 미소전자학 연구실에서 양자혁명이 어떻게 정보화 시대를 열었는지 탐구했고, 그 결실로 영향력 있는 기술도서로 꼽히는 《마이크로코즘》과 《텔레코즘》을 내놨다. 벤처 분석가·투자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1990년대 후반 그가 기술주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할 때마다 관련 주가가 즉시 요동을 쳐 ‘길더 효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폭넓고 해박한 기술적 지식과 통찰을 기반으로 기존 공급 중심 경제학에 정보 이론을 접목한 ‘엔트로피 경제학’을 제시한다. 물리학 개념으로 ‘무질서한 정도’를 뜻하는 엔트로피는 정보이론에서 돌발 상황, 무작위성, 잡음, 불균형, 복잡성의 단위이자 ‘선택의 자유’의 단위다. 예측 불가능한 발명가와 기업가의 자유의지와 창의성, 혁신에서 비롯되는 ‘돌발 정보’는 시장에 높은 엔트로피를 초래한다.

고(高)엔트로피는 기존 수익률을 훨씬 뛰어넘는 이익과 부의 급격한 증가 및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동력이다. 엔트로피의 경제적 결실은 창조와 이익이며, 자본주의는 고엔트로피 체제다.

이런 고엔트로피 정보가 널리 퍼지고 유통돼 기업가들의 창조성과 혁신이 높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저(低)엔트로피 매개체가 필요하다. 저엔트로피 매개체란 법규와 질서, 재산권 보호와 소유권 보장, 회계의 투명성, 통화의 안정성, 적절한 과세 수준과 같은 안정된 환경을 의미한다. 정부는 안정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저엔트로피 매개체를 제공해 기업가들의 고엔트로피 정보가 확산되고 많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만약 규제 남발과 정부의 빈번한 간섭으로 저엔트로피 매개체가 불안정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고엔트로피 매개체가 되면 고엔트로피 정보들은 갇히거나 소실된다. 그렇게 되면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가 닥친다.

저자는 2008년 금융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창조적인 기술적 비전과 혁신이 아니라 비대한 금융에 의해 지배되는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에 있다고 분석한다. 권력이 정보, 투자와 같은 고엔트로피가 아니라 돈, 금융 같은 저엔트로피에 치중함으로써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방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 개혁의 목표는 자본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기업가에게 유입되도록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경제의 미래는 창조적 기업가의 지식이 시장에 잘 적용될 수 있도록 금융과 같은 질서와 규칙이 어떻게 기능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보과학, 생물학, 물리학, 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와 저명한 학자들의 이론을 ‘엔트로피가 다소 높게’ 넘나들며 소개한다. 과학기술과 경제 관련 지식이 부족하다면 쉽게 읽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논지는 시종일관 명쾌하다. 지속적인 경제 발전과 사회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규제 철폐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통해 기업가들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가정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줄 만한 책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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