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신발에 미친 청년, '나이키 제국' 건설하다
“제록스, 클리넥스 같은 상징적인 브랜드는 이름이 짧다. 그리고 브랜드 이름에 K나 X가 들어가 센소리가 나면 오래 기억된다. ‘나이키(Nike)’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나이키가 승리의 여신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지금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는 첫 자서전 《슈독》에서 일본 운동화를 수입해 팔던 소규모 비즈니스로 시작한 회사가 세계적 스포츠용품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다. 책 제목인 ‘슈독(Shoe Dog)’은 신발만 생각하며, 신발에 일생을 건 사람을 의미한다.

나이트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재학 시절, 일본 카메라가 독일이 지배하던 시장을 뒤흔든 사실을 근거로 일본 러닝화가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육상 선수 출신으로 러닝화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에 있는 신발 회사를 찾아가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순간만을 생각했다.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고, 오니쓰카(현 아식스)에 전화해 약속을 잡았다. 근무하는 회사 이름을 얘기해 달라는 말에 얼떨결에 존재하지도 않는 ‘블루리본스포츠’라고 답했다. 대학원 세미나 시간에 발표한 러닝화 제품 조사 내용을 그대로 설명하면서 미국 시장의 잠재성을 부각했고, 마침 미국 진출을 준비하던 오니쓰카로부터 서부 지역 판매권을 얻었다.

나이트는 오리건대 육상팀 코치 빌 바우어만과 함께 정식으로 블루리본스포츠를 설립한다. 이후 7년 동안 오니쓰카를 위해 헌신했으나, 오니쓰카는 점차 그를 홀대하기 시작했다. 발송된 제품 수량이 잘못되고, 사이즈와 모델이 다른 경우도 빈번했다.

자구책을 찾던 그는 독자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기로 결심했다. 멕시코 외주 공장에 첫 주문을 넣고는 브랜드를 어떻게 정할지 고민했다. 회사의 첫 정규 직원이자 나이트와 대학원 동기인 제프 존슨은 꿈에서 ‘나이키’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동업자인 바우어만은 부인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다가 와플 틀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와플 틀의 격자무늬 패턴이 눈에 들어왔다. 그 패턴은 몇개월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패턴과 완전히 일치했다. 1970년 그는 와플 기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가벼우면서 지면과의 마찰력이 강한 고무 밑창을 개발했다. 부드럽고 푹신한 쿠션에 가격까지도 싼 와플형 운동화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1972년 미국 스포츠용품협회가 주관하는 전시회에서 나이키를 세상에 처음 알렸다. 주문량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고, 매출은 급증세를 탔다.

나이키는 할리우드 스타 마케팅 덕도 톡톡히 봤다. 드라마 ‘미녀 삼총사’의 여주인공 파라 포셋이 나이키 제품인 ‘세뇨리타 코르테즈’를 신은 모습이 TV에 잠깐 비치면 미국 전역 나이키 소매점에서는 그 제품이 다음 날 오전에 다 팔리곤 했다.

나이트는 노동력 착취, 환경 문제 등 나이키 해외 공장을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기사가 나오자 10년에 걸쳐 회사를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기회로 활용했다. 신발 공장에서 비난의 대상이 됐던 것은 갑피와 밑창을 결합하는 러버룸(rubber room)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유독 가스가 심했다. 나이트는 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수성 접착제를 발명해 공기 중 발암 물질의 97%를 제거했다.

나이트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인생 역정을 많은 젊은이와 나누고 싶다며 이렇게 조언한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앞으로 40년 동안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누구하고 함께 쓰고 싶은지 깊이 고민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직업에 안주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천직을 찾아라.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더라도, 계속 찾도록 노력하라.”

강경태 < 한국CEO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