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는 더이상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에만 국한되지 않게 됐다. 스타들을 중심으로 'K 패션'이 주목받으면서 동대문 역시 한류 패션문화의 대표지역으로 집중 조명되고 있다. 가장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동대문 쇼룸 '차오름'. 서울산업진흥원(SBA)의 주관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아이디어와 역량이 뛰어난 중소 패션브랜드, 신진 예비창업 디자이너들을 육성해 해외진출을 지원한다. 차오름이 주목하는 패션 브랜드의 수장들을 만나봤다. 당신이 앞으로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편집자주>
보울하우스의 제품보증서에는 실오라기가 달린 실제 사용 바늘이 함께 동봉된다. /사진=보울하우스
보울하우스의 제품보증서에는 실오라기가 달린 실제 사용 바늘이 함께 동봉된다. /사진=보울하우스
‘무엇을 샀는가’보다 ‘어떻게 만들어진’ 것을 샀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가 왔다. 공장에서 획일화된 제품들이 생산될 때 장인은 긴 밤을 홀연히 버티어 낸다. 만든 이의 개성과 체온, 예술성이 오롯이 담긴 고독의 결정체는 손끝의 언어(language of hand)가 되어 우리에게 왔다.

대한민국에도 젊은 장인이 있다고 자부한다. ‘장인’이라는 소리에 얼굴을 붉히는 이 남자, 보울하우스(BOULHAUS) 강신권(29) 대표다.

강 대표는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수작업으로 만든다. “제가 무슨 장인이라고… 조금 창피하긴 하네요. 단지 크래프트맨십(craftsmanship), 즉 장인정신의 즐거움을 알리고 싶었어요. 완성된 제품이 주는 만족감, 오래 사용하고 바래고, 때가 타면서 느껴지는 친숙함. 그리고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상상을 복합적으로 전달하고 싶었죠. “

보울하우스의 가방을 사면 실오라기가 달린 매끈한 바늘이 함께 온다. “만드는 과정에 대한 즐거움을 소비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인증서에 바늘을 동봉해 드리게 됐죠. 구태의연하고 재미없는 방식 말고 다른 언어로 이야기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소비자와 만드는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독특한 이름에도 있었다. “제품은 무위 500, 421, 328 같은 식으로 네이밍을 합니다. 이때 500, 421과 같은 숫자는 바느질 땀 수예요. 무위 500 제품 같은 경우는 딱 500 땀으로 끝났어요.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소름이 돋죠. 그렇게 딱 떨어지는 숫자는 다른 제품에도 없거든요. 의도한 것이 아니라 쾌재를 부른 기억이 있습니다.”

‘장인이 한 땀, 한 땀…’이라는 유명 드라마의 대사가 떠오르는 기발하고 재치 있는 이름이다. 구매자 중 실제로 땀 수를 센 사람은 없느냐고 묻자 “아직까지는 없다”면서 “그래서 정확하게 땀수를 맞춘다”라고 대답했다. 또 강 대표는 보울하우스의 모든 제품을 호두나무, 이태리 베지터블 레더 등 천연소재를 사용해 만든다. “환경오염이 거의 없는 제품”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고 전했다.
'보울하우스' 강신권 대표가 DDP 차오름에서 한경닷컴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최혁 기자
'보울하우스' 강신권 대표가 DDP 차오름에서 한경닷컴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최혁 기자
사실 강신권 대표는 패션 업계에서는 드물게 산업디자인과 출신이다. “원래 가구를 만들고 싶어 유학 준비를 했죠. 외국 가서 2~3년 동안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오는 것은 타이틀에 불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가구 브랜드를 론칭했죠. 녹록지 않았어요.”

당시 사회 초년생인 강 대표는 물류창고 임대료부터 원자재 구입까지 대규모 사업을 혼자 핸들링 해야만 했다. 결국 호되게 매운맛을 볼 수 밖에 없었다. 홍대에 위치한 모 가구회사에 인턴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인턴 때는 디자인보다 공장에서 일을 많이 했어요. 나무 깎고 사포질하고. 그런데 즐겁더라고요. 아, 이게 크래프트에 대한 즐거움이구나. 생각했죠. 가구를 해서 나무라던지 가죽 소재에 대한 이해는 다행히 잘 되어 있었죠. 그래서 핸드백, 액세서리 위주의 소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기술을 익히면서 되려 디자이너로서의 철학이 생겼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 때 디자인 진흥원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디자이너 20인에 뽑혀 독일로 연수를 갔었어요. 그 친구들의 디벨롭 방식에 큰 차이를 느꼈죠. 무형적인 철학에서 접근한다기 보다 사회를 이해하고 물성적인 것을 고민하더라고요. 또 친환경적인 관점에서의 에코가 아닌 미래 사람들과 내 디자인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을 심도 있게 고민하더라고요. 디자이너로서 살아감에 있어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울하우스는 지난해 11월에 론칭 후 올해 8월 DDP 차오름에 입점했다. 차오름은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운영하는 공공 쇼룸이다. 견본품을 전시해 바이어에게 상품을 보여준 후 상담을 통해 계약 및 오더를 진행하는 B2B 방식으로 운영된다.

“다른 유통회사는 민간에서 운영하다 보니 수익 배분에 굉장히 민감해요. 그에 비해 차오름은 굉장히 합리적으로 분배하죠. 중요한 것은 ‘의미’입니다. 보울하우스와 같은 작은 브랜드에게 울타리가 되어줘요. 신생 브랜드들은 실제적으로 바잉이 돼 수익이 높아진다는 것 보다 마음이 따뜻했으면 해요. ‘내 것’ 못 할 것 같아 그만두는 친구들이 꽤 있죠. 차오름은 ‘내 것’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고, 누군가 와서 봐주고, 즐거워 해주는 그런 공간이예요.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싶어요.”
보울하우스 제공
보울하우스 제공
보울하우스(BOULHAUS)의 보울(BOUL)은 그릇(bowl)을 발음기호대로 쓴 것이다. “디자인은 타고난 친구들이 많죠. 특별히 전수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크래프트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육의 본질은 사람의 능력과 가능성을 ‘담아’주는 거죠. 타인이 의도해 이끄는 것이 아니고요.”

강신권 대표는 ‘교육’에 대한 열망에서 브랜드가 시작됐다고 했다. “’트렌디한 유럽풍의 아메리칸적인 느낌을 따라 OOO이다’ 라고들 브랜드 이름을 짓곤 하는데 저는 그렇지가 않았어요. 디자인적인 것을 떠나 크래프트맨십이 기술 전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들을 브랜드에 투영하고 싶었죠. 먼 훗날에는 대안학교라던가 크래프트 장인 학교를 설립하고 싶어요. 언젠가 어떤 누군가는 내 생각에 호기심을 느끼고 동참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새로운 도전에 대해 귀띔했다. “조금 우습고, 혹자는 따라 한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요. 샤넬 같은 경우 꾸뛰르 제품들을 매 시즌마다 내놓고 영상으로 선보이죠. 염색해서 말리고, 꿰매고, 하는 갖가지 공정들을요. 국내 핸드백 브랜드는 꾸뛰르를 다소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기존 판매 라인과 분리해 보울하우스만의 ‘이상’을 담은 꾸뛰르 라인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 최혁 기자, 보울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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