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지진, 과학자 그리고 과학적인 사회
지난달 17일 저녁 경주를 진앙지로 한 규모 5.8의 강진이 영남지역을 강타했다. 포항에 거주하고 있는 필자도 두 차례에 걸쳐 강하게 집이 흔들리고 가구가 넘어지는 공포스런 체험을 했다.

국민이 여태까지 체험한 적 없던 강도의 지진과 이에 따른 공포감은 방송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미 발생한 지진과 앞으로의 예상에 대한 전문가 조언을 갈구하게 했다. 그런데 국민 앞에 등장한 것은 지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기상청 공무원과 국민안전처 관료들이었다. 이들이 제공한 정보는 적확하지도, 때맞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그러자 수많은 유언비어가 생겨났고 많은 매체가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해줄 지진 전문가를 찾아 우왕좌왕하게 됐다.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았다. 이때야 알게 된 것은 한국에 지진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학자가 매우 적고, 국내 활성단층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 결과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필자도 지진 피해지역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의 무능하고 비전문적인 대처에 분노했고, 전문적이고 명확한 지진에 대한 해석이 없어 답답했다.

이쯤에서 본론의 주제를 꺼내놔야겠다. 과연 우리에게 기초분야를 묵묵히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이다. 여느 때 같으면 정부 정책 담당자를 포함해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답변을 하는 분들이 꽤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목도한 현실을 보라. 국가적인 재앙이 닥쳐서야 기초과학이 부실하다는 것을 모두 함께 느끼고 답답해하며 미래 아니, 당장 내일 닥칠 수 있는 사태에 대해 준비되지 않은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확인할 뿐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메르스 사태, 원전 안전과 방사성 폐기물 문제, 조류인플루엔자 문제 등에 대해 한국 사회의 대처는 우왕좌왕 그 자체였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국가지도력의 부실, 행정부처의 무능, 정부 정책의 졸속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사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부족도 공통적으로 존재했다. 이런 전문가는 해당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기초과학자들이다. 이들의 부족은 정부와 국민에게 적확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고, 국가지도자와 행정부처들이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늘 우리가 평소 관심을 두지 않는 어떤 분야를 열심히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필요하고,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의 일부로 이들을 사회가 지원하는 것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과 함께 또 한 가지 보태고 싶은 얘기가 있다. 최근 위기 사태들을 돌이켜보면 사회 전체의 경직된 논의 구조와 이로 인해 파생되는 국민과 정부, 전문가 사이의 불신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불신은 천안함, 세월호, 메르스, 가습기 살균제, 원전 안전, 경주 지진 등을 겪으며 계속 증폭되고 있다. 정부의 중대 발표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도 없고, 정부가 내세우는 전문가들의 말도 제대로 먹히질 않는다. 국민은 각자도생 길을 택해 인터넷에서 정보의 조각들을 찾아 헤매고, 결국 ‘전 국민의 전문가화’를 초래하게 됐다. 이런 현상은 전적으로 정부와 전문가들의 무능과 잘못된 행태가 초래한 것이다. 즉, 전문성이 부족함에도 정치적인 계산 아래 권위를 앞세워 비판과 합리적인 토론을 막는 너무나도 비과학적인 행태를 보인 것이다.

과학은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로 얻어지는 과학지식이지만 동시에 언제든지 비판되고 검증되는 것이 열려 있는 논의의 틀을 말하기도 한다. 이는 근현대 과학과 이전의 권위적 지식체계를 가름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한 작금의 사태들은 과학자의 부족에 기인하지만 한국 사회 자체의 비과학성에도 기인한다. 한국 사회가 더 이상 사상누각을 짓지 않기 위해서 즉, 활성단층 인근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과 원전을 짓지 않기 위해서, 또 아기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약품을 판매하고 방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학자가 필요하고 언제나 비판과 검증에 열려 있는 과학적인 사회가 필요하다.

염한웅 < 포스텍 교수·물리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