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깨우는 한시 (8)] 수인감사편시몽(誰人甘死片時夢) 초연독보만고진(超然獨步萬古眞)
성철 스님(1912~1993)은 생가를 나서면서 출가시를 남겼다. 선사는 젊은 시절 제자백가를 비롯한 많은 책을 접했으나 가슴 한편은 늘 미진했다. 어느 날 탁발승에게 얻은 신심명(信心銘)·증도가(證道歌)를 읽고서 눈앞이 훤해지는 체험을 했다. 이후 불경 공부에 전념했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진로를 바꾼 것이다. 출가시는 그 결과의 산물이다. 임종게(臨終偈)와 오도송(悟道頌)은 흔하지만 출가시(出家詩)는 귀하다. 끝은 창대할지라도 시작은 대부분 미미한 까닭이다.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 속의 한 점의 눈이요(彌天大業紅爐雪),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일지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이라(跨海雄基赫日露)”고 하여 세상살이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고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수행에만 전념했다. 훗날 조계종 종정(宗正·법왕)이 됐다. 벌써 열반 23주기(음력 9월20일)가 되었다.

청나라 3대 황제 순치제(順治帝·1638~1661)의 출가시도 내용은 비슷하다. “왕 노릇 18년 동안 자유가 없었다(十八年來不自由)”고 하면서 궁궐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산시(山西)성 문수성지 오대산(五臺山)으로 떠나며 출가시를 지은 것이다. “백년의 세상일은 하룻밤의 꿈속이요(百年世事三更夢), 만리강산 나랏일은 한 판의 바둑대국이라(萬里江山一局碁)”고 총평했다. 새 왕조의 기틀을 닦고 성군(聖君)인 강희제(康熙帝)가 출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정치적으로 성공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큰 나라의 제왕(帝王)일지라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있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법왕(法王)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왕자와 법왕의 지위를 모두 누린 붓다는 출발부터 탄생게(誕生偈)로 시작했다. 도솔천에 있는 ‘하늘의 집(天上家)’을 떠나 사바세계로 오면서 “이 세상은 모두가 고통이지만 내가 마땅히 편안하게 만들겠다(三界皆苦 我當安之)”고 외쳤다. 이것이 출가시의 원조가 되었다.

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