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기초과학은 국민의 관심을 먹고 큰다
다른 곳에서 일어난 일이나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종이에 쓰인 소식을 사람들이 서로에게 전달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다. 유럽에서는 17세기 중반에 이미 오늘날과 같은 신문을 발간하기 시작했는데 산업혁명으로 수백만의 인구가 도시를 이루면서 신문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고 여론을 주도했다. 최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종이신문이 인터넷으로 바뀌고 있지만, 이는 신문의 역할과 기능이 확장되는 것이기에 그 영향력은 미래에 더욱 커질 것으로 믿는다.

독자들은 신문을 통해 세상을 파악한다. 즉, 신문은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어서 동쪽으로 창을 내면 독자들은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활기를 지닐 수 있지만 서쪽으로 창을 내면 저녁에 지는 해와 더불어 침체될 수밖에 없다. 해가 뜨고 지는 것 모두 사실이기에 어느 쪽으로 창을 내든 옳고 그른 바는 아니지만, 신문은 당연히 우리의 미래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드는 방향을 고민하리라 믿는다.

그런 측면에서 신문의 1면은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가장 크고 밝은 창이다. 우리의 경우 최근의 신문 1면들은 북한의 핵개발, 지진, 파업, 국회 소식뿐인데 이는 이런 일들에 국민이 가장 큰 관심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아니라 미래를 밝히는 일에도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미래가 과학기술 발전에 달려 있음을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이 분야의 성과는 수년 전 허망하게 끝난 황우석 교수에 관한 것 외엔 1면에 오른 적이 없는 듯하다. 이는 결국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 때문이겠지만 오히려 신문이 이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이 무관심한 것 아닐까.

2009년 12월10일자 미국 뉴욕타임스 1면에는 ‘유럽에서 달성한 기록적인 입자가속 에너지’에 관한 소식이 실렸다. 유럽핵물리연구소가 둘레 27㎞ 크기의 도넛 모양 가속기에서 얻은 과학적 성과를 알리는가속기 자체의 준공이 아니다- 뉴스인데 우리 신문들도 이런 일에 보도 가치를 느낄지 궁금하다.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 즉 전자(電子) 등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빠르게 가속시키면 아주 밝은 빛이 나오는데 가속기는 이 빛을 이용해 물질의 극미(極微) 세계와 찰나(刹那)의 순간을 관찰하는 시설이다. 사실 이런 입자들의 세상은 우리에게 대단히 생소하다. 예를 들어 야구경기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의 경우라면 그 속도와 방향으로부터 공이 언제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갈지 혹은 아닌지를 짐작할 수 있지만 원자 세계의 입자들에 대해서는 이런 예측이 불가능하며 이를 불확정성 원리라 부른다.

이런 분야를 다루는 학문인 양자역학(量子力學)의 선구자로 노벨상을 수상한 닐스 보어조차 “만약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완전히 혼란에 빠지지 않았다면, 이는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으니, 원자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는 것은 보통 사람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관심을 갖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런 연구를 하는 곳에서 인터넷도 개발됐고 의료용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도 만들어졌으며 앞으로 난치병을 치료할 신약도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포항에서는 길이 1.1㎞의 대한민국 최장 시설인 ‘4세대 가속기’가 준공됐다. 전자가 직선 유도관을 달리며 가속돼 태양 빛의 1000조배보다도 훨씬 더 밝은 빛을 만들면, 이를 이용해 물질의 나노세계를 관찰하면서 1000조분의 1초 사이의 일까지 알아낼 수 있는 시설이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갖게 된 4세대 가속기의 준공식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다. 그러나 오로지 두어 개 신문에서만 이 소식을 1면에 담았다. 아쉬운 일이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도 국민의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발전한다. 그리고 그런 관심을 유발하는 것은 신문이다.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