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경제학상] 최인 서강대 교수 "논리만으론 복잡한 경제현실 파악 못해…계량적 실증 필요한 이유"
내가 대학을 다닌 1970년대 후반은 대학 교육이 온전치 못했다. 학교는 툭하면 휴교했고 정보 제공도 부족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몰랐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고시 공부는 절대로 안 한다는 것이었다. 주어진 과목을 반복하는 공부가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은 다행히 적성에 맞았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이승훈 교수님, 정기준 교수님 등의 도움으로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해군 장교로 입대했을 땐 함상근무 중에도 틈틈이 책을 읽으며 유학을 준비했다.

유학을 갈 땐 산업조직론을 공부할 생각이었지만 계량경제학을 배우면서 계량경제이론에 빠지게 됐다. 수학 통계학 확률론 등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여기엔 피터 필립스 교수의 영향이 컸다. 그분은 1시간 이상 수준 높은 이론을 쉴 새 없이 명쾌하게 전달했다. 나도 저런 지성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당시 필립스 교수는 시계열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여기에 뛰어 들었다. 시계열은 주가 환율 이자율처럼 시점을 근거로 수집한 데이터다. 거시경제학과 국제금융, 재무관리 등에 자주 등장한다.

1980년대엔 시계열모형 중 ‘불안정시계열 모형’에 관심이 높았다. 시계열이 안정적이면 평균을 중심으로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시계열이 불안정적이면 그런 규칙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장기추세를 제거한 국내총생산(GDP)이 안정적이라면 한동안 호황 후엔 반드시 불황이 오고 한동안 불황 후엔 반드시 호황이 와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국가 경제에서 장기추세를 제거한 GDP는 불안정적으로 보인다. 최근 세계적인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이제는 호황이 올 때가 됐다는 생각을 누군가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황은 생각지 않게 오래 지속될 수 있고 호황도 그렇다.

나는 불안정시계열 분야에서 단위근(unit root)과 안정성(stationarity) 검정에 10여년간 매진해왔다. 귀국한 뒤엔 불안정 패널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패널데이터는 같은 경제주체에 대한 데이터를 일정 기간 수집한 것을 말한다. 노동경제연구원의 노동패널이 국내에선 중요한 패널데이터 중 하나다. 나는 패널데이터의 불안정성, 즉 단위근의 존재 유무를 검정하는 방법을 1990년대 후반에 만들었고, 현재 많은 연구자가 사용하고 있다.

나의 또 다른 연구는 내생성(endogeneity)이 있을 경우 회귀분석이다. 내생성은 경제변수들의 상호 관련성을 뜻한다. 전통적 방식의 회귀분석에서 이 내생성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도구변수(instrumental variables)를 이용하는 기존 방식은 실제 적용에서 문제점이 많았다. 나는 도구변수를 사용하지 않고 내생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 시절 경제학은 인간의 논리적 사고에 기초한 경제에 대한 이론이었다. 그러나 논리적 사고에 기초한 이론은 종종 현실을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한다. 수많은 경제주체가 만드는 복잡한 경제 현실을 인간의 논리적 사고로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이는 인간지성의 한계를 뜻하기도 한다.

현대 경제학은 이론을 바탕으로 경제현상을 분석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이를 실증적으로 검증하는 단계도 중시한다. 실증분석 방법으로서 계량경제방법론은 중요하다. 경제이론과 계량경제방법론은 언뜻 멀어 보이지만 상호 보완적이다.

약력 △1958년생 △198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90년 미 예일대 경제학 박사 △1989~1994년 미 오하이오주립대 부교수 △1993~2001년 국민대 부교수 △2001~2005년 홍콩과기대 부교수 △2005~2009년 홍콩과기대 교수 △2007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2010년 영국 리드대 초빙교수 △2011년 독일 본대 초빙교수 △2012년 미 터프츠대 초빙교수 △2014년 미 시러큐스대·텍사스대 초빙교수 주요 저서 △1998년 《계량경제학》 (연암사) △2015년 《Almost All about Unit Roots:Foundations, Developments and Applications》 (케임브리지대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