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2016 대한민국 갑질 리포트] 물건 다시 가져가…알지? 자발적 회수로 서류 꾸며
한 화장품 회사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김모 여성 팀장. 그는 지난달 사내 회식 중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술자리에 와달라”는 모 시내면세점 마케팅 임원의 연락 때문이었다. 김 팀장은 “도착하니 이미 취한 상태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술을 따르라고 했다”며 “100만원이 넘는 술값도 대신 계산하고 모범택시로 바래다줬다”고 말했다.

가공식품 업체인 A사는 지난 5월 대형마트에서 황당한 요청을 받았다. “반품 기간(30일)이 지난 재고 물품을 다시 가져가라”는 내용이었다. “합법적 반품 형태가 되도록 자발적으로 회수를 요청한다는 이메일을 우리에게 보내주면 좋겠다”는 말도 곁들였다. A사 관계자는 “요구가 어처구니없었지만 납품할 수 없게 될까봐 손해를 감수하고 반품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유통업체의 갑질 형태가 교묘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적발당할 행동은 가급적 하지 않고 만약을 대비해 절대 문서로 남기지 않는 게 유통업계의 철칙이 됐다. 이 때문에 모든 지시와 부탁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한다. 물론 이때 휴대폰 전원은 꺼야 한다.

B면세점 이 대표적 사례다. 이 면세점은 수익성을 올리기 위해 일부 시계 브랜드에 “다른 면세점에도 우리와 같은 조건으로 제품을 팔 수 있게 하라”고 구두로 전달했다. 일반적으로 면세점은 제품을 직접 구입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데 면세점이 공급받는 가격은 크게 차이가 없다. 다만 면세점이 자체적으로 좀 더 싼 가격을 매겨 고객을 유인한다. B면세점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시계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마트 3사는 무임금으로 납품업체 직원들을 부린 혐의 등으로 5월 공정위에서 238억9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대규모 유통업법이 3000㎡ 이상 매장에만 적용되는 점을 알고 3000㎡ 미만의 중소 매장에서 대가 없이 납품업체 직원들을 혹사시켰다는 지적이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