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음담패설
음담패설(淫談悖說)은 음탕하고, 도리에 어긋한 얘기다. 주로 남녀간의 난잡하고 부정한 성생활이 소재다. 소담(笑談), 즉 웃기는 이야기에 속하는데 요즘 말로 하면 ‘야한 유머’ 정도로 보면 된다.

뭔가 교훈을 주는 해학과 달리 지나치게 직설적이다. 또 성기에 대한 직접 묘사와 상스러운 표현이 많다 보니 주로 구전으로 전해진다.

1947년 송신용이 편찬한 《조선고금소총(朝鮮古今笑叢)》과 1959년 민속자료간행회가 낸 《고금소총》은 조선시대 민간에 전해지던 소담과 음담패설을 모은 자료집이다. 일부 학자들은 서거정, 강희맹, 홍만종 등 당대 대학자들이 기록한 음담패설도 다수 들어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문장가들은 어쩌면 음담패설을 ‘가장 인간적인’ 미학으로 봤는지도 모른다. 하기야 《천일야화》도 알고 보면 야하기 그지없는 음담패설 아닌가.

TV나 스포츠같이 재미있는 것이 적던 시절, 음담패설은 술자리의 단골 메뉴였다. 점잖게 ‘Y담’이라고도 했고 영어 약자처럼 ‘EDPS’라고도 불렀다. 요즘 건배사 하나 정도는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유머나 음담패설 한두 개는 메모해 다녀야 하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최고의 음담패설은 단연 독도 옆에 있다는 ‘X도’ 시리즈였다. 공식 화폐가 ‘고환’이고 가장 큰 절이 ‘복상사’였다는 등 너무 리얼해서 옮기기가 민망하다. 거기 비하면 말 시리즈는 제법 수준이 있었다. 암말이 죽으니 수말이, “할 말이 없네”라고 했고, 다른 집에선 수말이 죽으니 암말이 “해줄 말이 없네”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뒷집 총각말은 들판에 나갔다가 암말 수십 마리를 보고는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네”라며 킁킁 콧소리를 냈다고. 이런 음담패설 하나 정도는 ‘걸쭉하게’ 할 줄 알아야, ‘인물’이라는 소리를 듣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996년 양성평등기본법에 ‘성희롱’이 명시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법, 고용평등법 등 성희롱을 처벌하는 법이 늘면서 더욱 살벌해졌다. 본인은 ‘웃자고 한 얘기’라고 우겨도, 상대방이 수치심을 느끼면 성희롱 범죄로 고소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퍼지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미국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음담패설 스캔들에 휘말려 위기를 맞고 있다. 수년 전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한 녹음들이 공개된 것이다. 트럼프는 ‘라커룸에서 나눈 수준의 사적 얘기’라고 했지만, 경쟁 선거에서 이만한 악재도 없을 것이다. 음담패설이 패가망신을 부르는 시대가 됐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