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포럼 2016] "엘리트 중심의 교육은 '흙수저'를 위한 긍정적 차별 제도"
“프랑스에서 엘리트 교육은 ‘긍정적 차별 제도’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프랑스 고위 공무원 양성 교육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의 나탈리 루아조 총장(사진)은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플뢰르 펠르랭(한국명 김종숙) 전 프랑스 문화장관은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자랐지만 ENA에 입학해 최고 엘리트로 성장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ENA는 프랑스 그랑제콜(grandes ecoles)을 대표하는 교육기관 중 하나다. 1945년 샤를 드골 대통령이 세운 대학원으로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 엘리트를 키우는 게 목표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등 수많은 정계 인사가 ENA를 졸업했다.

연간 선발 인원이 100명에 불과한 데다 졸업 요건도 깐깐하다. 인문계 학생들에게 ENA 졸업이 ‘출세의 지름길’로 여겨질 정도다. 한국이 3대 국가공무원 시험(행정·사법·외교관후보자시험)을 통해 고급 관료를 양성한다면 프랑스에선 ENA가 이런 역할을 맡고 있다.

루아조 총장은 엘리트 중심의 교육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교육투자 부족→인재양성 미흡→경제침체→교육투자 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NA는 소수에게 기회를 주는 대신 학생 선발 과정에서 출신, 배경이 당락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입학 과정에서 서류심사나 형식적인 인터뷰보다는 학생과의 장시간 대화를 통해 동기와 의지, 잠재력을 판단한다. 이민자나 서민에 대한 할당도 별도로 있다. 입학 자격은 26세 미만의 고등학교 졸업 자격자와 최소 5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한 26~30세로 제한한다. 입학하면 전액 장학금과 함께 무료 기숙사 등 파격적인 혜택을 준다. 다만 졸업 후 최소 10년 동안 공직에 몸담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루아조 총장은 ‘직업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을 중시한다. 현장 교육의 하나로 ENA에 입학한 학생은 최소 세 개 이상의 기관에서 인턴을 해야 한다. 그는 “모든 학과의 수업은 철저히 사례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각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정부 관계자나 판사 등이 수업하면서 딱딱한 이론 교육으로 흘러가는 걸 막고 있다”고 했다. 졸업한 뒤 현장에 투입됐을 때 실무 경험이 부족해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려는 목적이다.

루아조 총장은 “프랑스에선 14세부터 인턴생활을 경험한다”며 조기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조기교육의 의미는 기업 현장과 학교를 오가며 실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어린 나이부터 배운다는 뜻”이라며 “현장과 교육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지식의 실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 선발 방식이나 수업 내용도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루아조 총장은 “2030년이면 현존하는 전문직 가운데 60%는 없어지거나 활동 영역이 크게 바뀔 것”이라며 “전례 없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미리 양성하는 게 교육자의 역할”이라고 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