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민주·공화 양당 대통령 후보가 사실상 결정된 뒤 팽팽한 접전 양상을 보이던 미국 대선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이달 들어 연달아 공개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납세회피 의혹’ 자료와 ‘음담패설’ 동영상이 승패를 가를 결정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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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트럼프…요동치는 미국 대선] "트럼프, 백악관 주인 될 자격 없다" 공화당서도 교체론 급속 확산
반론도 있다. 트럼프가 당내 경선을 이기고, 본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까지 따라잡은 저력으로 이번 대형 악재를 거뜬히 극복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9일(현지시간) 2차 TV 토론이 트럼프가 살아남느냐, 조기 낙마하느냐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동영상 스캔들 이겨낼까

트럼프는 지난해 6월 대선 출마 이후 △멕시코 이민자 비하 △여성 앵커 비하 △무슬림 입국 금지 △멕시코 출신 판사 비판 △러시아에 대한 힐러리 이메일 해킹 사주 △무슬림 참전용사 가족 모욕발언 등 수많은 문제 발언으로 위기를 겪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전체 유권자의 36%에 달하는 백인 남성층의 강력한 지지를 기반으로 그때마다 용수철처럼 지지율을 회복했다.

하지만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공개된 납세회피 의혹 자료와 음담패설 동영상은 충격파가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가 7일 공개한 3분짜리 동영상에는 트럼프가 저속하고 노골적인 표현으로 유부녀를 유혹한 경험 등이 담겨 있다. 그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유부녀를 상대로 “세게 대시했고, ××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신이 스타면 그들(여자)은 뭐든지 하도록 허용한다”며 “××(여성의 특정부위)를 움켜쥐고 어떤 것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딸 이방카를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는 발언마저 서슴지 않았다. 9일 CNN방송에 따르면 트럼프는 한 라디오 DJ가 이방카에 대해 “피스 오브 애스(piece of ass·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매력적인 여성을 지칭하는 말)라고 불러도 되겠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당장 대선후보 펜스로 갈아야”

발언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도저히 백악관 주인이 되겠다는 사람의 언행으로 보기 힘들다는 ‘자질론’을 기반으로 한 비판이다. 클린턴은 동영상 공개 직후 트위터를 통해 “정말 충격적”이라며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공세를 폈다.

공화당은 전당대회 이후 어렵사리 구축된 트럼프 중심의 선거체제가 급속히 붕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8일 예정돼 있던 트럼프와의 위스콘신주 합동유세를 취소했다. 부통령 후보인 마이크 펜스는 “트럼프의 발언과 행동에 상처받았다”고 러닝메이트로서는 이례적인 발언을 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들에 따르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포함해 아홉 명의 현역 상·하의원이 동영상 공개 후 지지 철회를 선언했다. 당내 서열 3위인 존 튠 상원의원은 “지금 당장 트럼프는 후보를 사퇴하고 펜스가 우리 당의 후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2주 전 했던 지지를 철회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1분30초짜리 동영상을 게재해 사과했다. 하지만 “절대 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8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선거전에 남겠느냐는 질문에 “100%”라고 답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가 9일 2차 TV 토론에서 인상적인 방어와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3차 토론은 들을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