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 서봉리에서 8년째 한글을 공부하며 지난 4월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낸 할머니들이 서봉리 ‘길 작은 도서관’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양양금(68), 박점례(68), 안기임(82), 김점순(78), 윤금순(81) 씨. 뒷줄 왼쪽부터 김막동(82), 최영자(84) 씨.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전남 곡성 서봉리에서 8년째 한글을 공부하며 지난 4월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낸 할머니들이 서봉리 ‘길 작은 도서관’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양양금(68), 박점례(68), 안기임(82), 김점순(78), 윤금순(81) 씨. 뒷줄 왼쪽부터 김막동(82), 최영자(84) 씨.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우린 시가 뭣인지 몰러. 슨상님이 그냥 써보라고 해싸면 ‘고것이 뭣이지’ 혔어. 살아온 거, 느낀 거 써 불면(버리면) 된다 혀서 쓴 거여. 근데 그게 좋다고들 허니까 신기혀.”

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전남 곡성 서봉리 ‘길 작은 도서관’(관장 김선자)에 모인 ‘할머니 시인들’ 김점순(78) 박점례(68) 안기임(82) 양양금(68) 윤금순(81) 씨 등 다섯 명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6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인 이들은 8년 전부터 이 도서관에서 한글을 배우다가 관장의 권유로 시를 쓰기 시작해 지난 4월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김막동 김점순 도귀례 박점례 안기임 양양금 윤금순 조남순 최영자)를 내놓아 화제가 됐다.

전남 사투리가 구수하게 배어 있는 이들의 시는 단순하지만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겼다. ‘저 사람은 저렇게 빤듯이/걸어가니 좋겄다/나는 언제 저 사람처럼/잘 걸어 갈끄나’(양양금 ‘좋겠다’ 중에서), ‘달이 훤허드냐고?/벌로(건성으로) 봤지’(박점례 ‘추석2’) 등 각 시엔 늘그막에 배운 한글로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전하는 시골 할머니들의 감성이 묻어난다.

할머니들은 “다 늙어서 공부하려니 돌아서뿔면 잊아뿔고, 받침이 너무 어려워서 힘들었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글을 느끼며 얻은 ‘소박한 기쁨’이 그들의 삶을 바꿨다. 박씨는 “한글 알고 나니 차도 어디로 가는지 알고, 편지고 뭐고 다 읽을 수 있어서 좋았제”라며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양씨는 “글자 쓰고 나서 슨생님이 잘했다고 동글뱅이 쳐주는 게 애기들맨키(처럼) 좋더라”며 웃었다. 윤씨는 “넘한테 아쉬븐(아쉬운) 소리 안 허고 내 앞가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김선자 관장의 시어머니이자 할머니 중 유일하게 중학교까지 나온 안씨는 “글을 알긴 허는디 통 써먹을 데가 없었고, 시집 와서 참 힘들었제”라고 했다. 다섯 할머니는 이구동성으로 “자식이랑 손주들에게 문자 보낼 때가 제일 행복하더라”며 한글을 공부한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할머니들은 왁자지껄한 웃음 속에 젊은 시절 배우지 못한 설움도 전했다. 양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난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그 노래 있잖여. 그거 들으면 기분이 쫌 그랬어. ‘나도 댕겼으면 저런 거 부를 수 있었을 텐디’ 했제. 그땐 머이매들만(남자애들만) 가르쳤어. 나야 동생들 키우고, 집안일 돕고 그랬제. 새끼들은 많고, 묵을 건 없으니 집안에선 ‘입 하나라도 덜어야 한다’고 딸내미들을 그냥 일찍 여워(결혼시켜) 부렀어. 나도 열여덟 살 때 시집을 왔어.”

마을 주민이자 길 작은 도서관을 운영 중인 김관장은 “원래 아이들 공부시키려고 만든 곳이었는데, 할머니들께서 청소하시다가 책을 거꾸로 꽂는 걸 보고 한글을 모르는 걸 알았다”고 했다.

“할머니들께서 쓴 시를 보면 뭔가 느껴지는 게 참 많아요. 이번에 시집 낸 분들의 작품은 올겨울에 ‘눈 오는 날’을 주제로 그림책으로 엮을 예정이고요, 앞으로 다른 분들의 시도 계속 모으려고 해요. 겉으로 보기엔 초라해도 이곳은 참 귀한 공간입니다.”

곡성=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