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그랬다. 국·과장들이 정책의 큰 줄기를 정하면 젊은 사무관들은 꼼꼼한 데이터와 현장 분석으로 살을 붙였다. 대부분의 정부 정책은 그렇게 두 집단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빨간 줄 보고서’로 대표되는 ‘도제(徒弟)식 교육’은 그 끈끈함의 상징이었다. 요즘은 분위기가 바뀐 듯하다. 공직에 대한 가치관 변화와 정부부처의 세종 이전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의 ‘국·과장 꼰대’와 세종의 ‘베짱이 사무관’ 사이 간극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산다는 건] 국·과장이 보는 사무관 vs 사무관이 보는 국·과장
“사명감 갖춘 사무관 드물다”

국·과장들이 보는 요즘 사무관의 특징은 “과거보다 ‘스펙’은 우수하지만 적극성과 충성심이 떨어지는 유약한 젊은이”로 요약된다. A국장은 “외국어도 잘하고 인터넷 등에 익숙해 자료도 빨리 찾는 등 뛰어난 사무관들이 많다”면서도 “공직에 대한 특별한 철학 없이 그저 편한 직장 중 하나로 여기고 업무에 임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사회부처 C국장은 “과천청사 시절엔 저녁 자리에서 젊은 공무원들끼리 국가와 사회에 대한 진지한 토론도 자주 벌이곤 했다”며 “요즘엔 그런 싹수를 지닌 친구들이 드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부처 D과장은 “세종 이전 후 ‘칼퇴(정시퇴근)’를 꿈꾸는 ‘베짱이 사무관’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국·과장들은 세종에 정착한 사무관들의 ‘갈라파고스화’도 우려했다. D과장은 “지금 사무관들은 어쩌다 서울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도 피상적인 얘기만 듣고 금방 내려가는 등 ‘오피니언 리더’들과 너무 동떨어져 지낸다”고 했다. C국장은 “사무관들이 변화를 주도하기보단 흐름을 뒤따라가기 급급해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세종 이전으로 과거 같은 ‘도제식 교육’이 불가능해진 상황에 대해서도 아쉬워했다. A국장은 “보고서 토씨 하나도 옆에 앉아서 고쳐주며 가르쳐야 하는데 지금은 멀리서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대강 잡아주고 안 되면 대신 새로 써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롤모델 삼을 국·과장 안 보여”

사무관들 생각은 달랐다. “살인적 업무량으로 애국심이나 사명감을 느낄 겨를이 없다”는 게 이들의 호소다. 경제부처에서 근무하는 B사무관은 “국·과장들의 자잘한 지시사항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며 “50㎝ 자를 들고 회의실 책상에 놓인 자료와 필기도구 각을 맞추는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사회부처 E사무관은 “국민에 대한 봉사, 사명감 운운하지만 공무원은 ‘철인’이 아니다”며 “평균 오후 10시에 퇴근하는데 국·과장들은 ‘예전에 비해 열정이 없다’ ‘왜 편한 곳만 찾느냐’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한 사무관은 “매일 서울과 세종을 왕복하고, 오전 3~4시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인 부서도 적지 않다”며 “한 달에 책 한 권 읽을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이런 삶에서 어떻게 훌륭한 정책적 아이디어가 나오고 애국심이 솟아나겠느냐”고 반문했다.

‘롤모델’로 삼을 만한 국·과장이 없는 현실도 거론했다. 경제부처 F사무관은 “맨날 장·차관으로부터 어이없이 깨지는 국·과장들을 보면 저 자리에 가면 더 불행할 것 같다는 생각만 든다”고 했다. B사무관은 “국·과장들은 현안이 터져도 자기 부서와 무관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면피논리만 세운다”며 “만약 내가 속한 부서가 한진해운 담당이었다면 사전에 문제를 예측하고 대비책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고 말했다.

세종 이전에 대한 의견도 달랐다. F사무관은 “세종에 내려와 ‘갈라파고스’가 됐다고 하지만 그게 우리 탓도 아닌데 뭘 어쩌라는 것이냐”며 “가족과의 시간이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크다”고 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