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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38)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

입력 2016-10-07 16:51:33 | 수정 2016-10-07 16:52:00 | 지면정보 2016-10-10 S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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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뇌…
살인자의 평온한 얼굴 앞에서 절망한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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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의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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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2007년에 상영해 170만명의 관객을 모은 <밀양>. 배우 전도연은 이 작품으로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인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벌레 이야기》가 바로 <밀양>의 원작이다. <밀양>의 이창동 감독도 소설가 출신이어서 원작의 의미를 세밀하게 잘 반영했다.

198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윤상 군 유괴살인사건이 《벌레 이야기》의 실제 모델이다. 아이를 유괴해서 살해한 범인이 사형 집행 전에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가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빌겠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은 이청준 작가는 ‘참혹한 사건보다 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살해범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피해자 가족까지 걱정하는 게 왜 충격이었을까.

《벌레 이야기》는 화자인 남편이 담담하게 소설을 끌어간다. 아내가 마흔 가까이 돼 낳은 알암이는 다리 한쪽이 불편하고 성격이 유순하다. 친구도 없고 특별한 취미도 없던 알암이가 4학년이 되면서 주판에 취미를 붙여 주산학원에 열심히 다닌다.

어느 날 알암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고, 몇 달째 찾지 못하고 있다. 정신을 놓고 지내는 아내에게 이웃에 사는 김집사는 ‘주님’ 앞으로 나오라고 권유한다. 혼자서는 절대 그 짐을 감내할 수 없을 거라며. 아내는 김집사와 교회에 나가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살인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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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알암이가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절망한 아내는 더 이상 주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 슬픔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김집사는 끈질기게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유한다. 아내는 전지전능하다면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한다.

놀랍게도 알암이를 찾는 데 앞장섰던 주산학원 원장 김도섭이 살해범으로 밝혀진다. 알암이 엄마는 김도섭을 직접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했고 김도섭은 사형이 확정된다. 우리 속의 맹수처럼 복수심으로 안절부절못하던 아내는 김집사의 설득으로 다시 교회에 나가면서 차츰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김집사는 ‘알암이의 구원’을 운운하며 살해범을 용서하라고 권한다. 오랜 갈등의 시간이 끝나고 아내는 살인자를 용서하기로 한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아내의 심경이 단편소설 속에 잘 묘사돼 있다. 절망과 분노, 복수에 불탔던 아내가 과연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이청준 작가는 이 소설을 ‘사람의 편에서 나름대로 그것을 생각하고, 사람의 이름으로 그 의문을 되새겨본 기록’이라고 했다.

교도소를 찾은 알암이 엄마 앞에 나타난 김도섭. 그는 너무도 평온한 표정으로 ‘주님’의 용서와 사랑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신장과 두 눈을 기증할 약속까지 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사형집행일을 기다린다며 알암이 엄마에게도 용서를 구한다.

아내는 살인자의 ‘그토록 침착하고 평화스런 얼굴’에 경악한다.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 없어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라며 절규하던 알암이 엄마는 결국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만다.

사람의 편에서 본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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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뻔뻔하게 잘살고 있는데 사건의 후유증으로 피해자 가족이 고통받고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람의 편에서 의문을 되새겨 본’ 이청준 작가는 결국 아내가 힘겨운 삶을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그렸다.

온갖 갈등과 고통 속에서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살인자를 용서하러 갔는데 편안한 얼굴로 “나는 이미 용서받았다”고 말한다면? 알암이 엄마의 심경으로 《벌레 이야기》를 읽으면서 진정한 용서와 복수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라. 김집사가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말 속에 ‘해답’이 들어 있지만 인간이기에 ‘넘기 힘든 장벽’이 무수히 많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이청준 선생의 품격 높은 작품은 작가 지망생과 후배 작가들에게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어도》 《서편제》 《축제》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이 영화화됐다. 독특한 시각으로 인간사를 분석한 절묘한 이야기 속에 심오한 관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소설과 시나리오는 어떻게 다른지 《벌레 이야기》와 <밀양>을 차례로 감상하면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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