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르네상스호텔 스포츠센터 회원 60여명이 지난 5일 강남구청에 진정서를 낸 뒤 호텔 앞에 모여  삼부토건을 비판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르네상스 스포츠센터회원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옛 르네상스호텔 스포츠센터 회원 60여명이 지난 5일 강남구청에 진정서를 낸 뒤 호텔 앞에 모여 삼부토건을 비판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르네상스 스포츠센터회원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서울 역삼동 옛 르네상스호텔 스포츠센터(헬스클럽)는 대한민국 원로들의 ‘사랑방’으로 불린다. 480여명 회원의 화려한 면면 덕분이다. 김덕 전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 등 전직 장·차관만 20여명이다. 김진호 전 합참의장을 비롯해 ‘별’도 수두룩하다. 내로라하는 이들 ‘OB’가 화가 단단히 났다. 호텔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1인당 1800여만원의 회원권 권리를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한 채 쫓겨날 위기에 처해서다. 서울시와 강남구청 등에 진정서까지 냈다. 새 주인을 맞을 예정이던 르네상스호텔 재개발에 ‘빨간불’이 켜졌다.

◆암초 만난 르네상스호텔 매각

6일 르네상스호텔 정문엔 ‘영업중지’ 팻말이 붙어 있었다. 로비로 연결된 입구는 용역 직원으로 보이는 검은 양복 차림의 남성 6~7명이 지키고 있었다. 지난 6월 르네상스호텔을 운영하는 남우관광(삼부토건 자회사)과 호텔 및 부동산 소유권을 가진 신탁회사가 VSL코리아 등에 6800억원을 받기로 하고 호텔 등을 매각하면서 직원들은 모두 퇴사했다. 인적이 끊긴 이 건물에 5층 스포츠센터만 ‘정상 운영’ 중이다. ‘르네상스 스포츠센터회원 비상대책위원회’가 철거를 막기 위해 순번을 정해가며 센터 운영을 맡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28일이었다. 비대위 공동대표인 김성준 법무법인 산경 대표는 “30일에 헬스클럽을 폐쇄할 예정이라는 통보를 이틀 전에 일방적으로 받았다”며 “회원권 승계나 보전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은퇴 뒤 삶의 일부이던 ‘사랑방’이 사라진다는 상실감에다 권리조차 구제받지 못하게 되자 ‘행동’에 나섰다. 지난 5일 60명이 강남구청에 찾아가 진정서를 냈다. 호텔 새 주인에게 건축허가를 내주지 말라는 게 요지다. 회원들이 10만~100만원씩 걷어 소송도 준비 중이다.

강남구청은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구청 관계자는 “르네상스호텔 신·증축을 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건물주가 철거 신청을 해야 하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며 “호텔 운영회사와 스포츠센터 회원 간 법적인 문제가 있다면 행정처분 등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대위 측은 “내부 다툼을 해결해야 철거 허가를 내주겠다는 답변을 강남구청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전직 장·차관, 법원장 vs 삼부토건…강남 헬스클럽 '먹튀' 소송
◆대한민국 원로 VS 삼부토건 갈등

비대위는 권재진 전 장관을 비롯해 최공웅 전 고등법원장, 이영학 전 검사장 등 1988년부터 28년째 회원인 법조계 원로들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윤상현 새누리당 국회의원, 3선 국회의원 출신인 서상목 인제대 석좌교수 등 전·현직 정치인도 많다. 한때 ‘슈퍼갑’이던 이들이 이번엔 ‘을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김성준 대표는 “껍데기뿐인 남우관광 등 매각 측은 돈이 없다고 하고, 인수자 측도 책임을 회피한다”며 “돈 문제를 떠나 다들 평생 처음 겪는 모멸감 때문에 행동에 나섰다”고 했다.

이에 대해 VSL코리아 등 호텔 인수자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안”이라며 “회원권 보전 등은 삼부토건 자회사인 남우관광과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남우관광이 삼부토건 지분을 갖고 있고 호텔 매각으로 지분을 팔 수 있게 된 만큼 회원들에 대한 보상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르네상스호텔의 최종 인수회사는 ‘멕킨237’이라는 페이퍼컴퍼니다. 한화증권 한화생명 등 기관투자가들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조남원 전 삼부토건 부회장의 아들인 조창현 씨도 자금 모집에 일조했다는 게 투자은행 업계의 전언이다.

이날 VSL코리아 등은 호텔인수를 위한 잔금을 모두 납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남구청의 승인 절차가 남아 있어 호텔 재건축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대위는 인수자 측의 자금모집 주관사인 한화증권을 비롯해 르네상스호텔 신·증축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에도 진정서를 보냈다.

박동휘/박상용/강경민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