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거진 '한글 전용' vs '한자 혼용' 논란
오는 9일로 한글이 탄생한 지 570돌을 맞는다. 1446년 10월9일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는 한글날은 1990년 법정공휴일에서 빠졌다가 23년 만인 2013년 재지정됐다. 한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한 한자(漢字)를 재조명하고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아 매년 한글날을 앞두고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말 열린 시 산하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에서 한자로 된 행정용어 6개를 우리말로 순화했다고 6일 밝혔다. 한글로 바꾼 대표적인 행정용어는 ‘(기한이) 도래(到來)하다’ ‘병행(竝行)’ ‘가급적(可及的)’ 등이다. 서울시는 이같이 자주 쓰는 행정용어를 각각 ‘(기한이) 오다’ ‘함께’ ‘되도록’으로 표기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행정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고 있다.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에 따르면 한글을 우리나라 고유문자로 정해 공공기관 문서는 한글로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정부는 1970년부터 한글 전용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때부터 초등 교과서도 한글로만 편찬했다. 하지만 한자를 배제한 결과 국민의 언어생활과 문화에 큰 장애가 생겼다는 지적이 학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단어 약 51만개 중 한자어가 58.5%다. 고유어는 25.5%로 한자어의 절반 이하다. 한글만으로 한국어를 온전히 표기할 수 없다는 근거로 활용된다. 1990년대 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20~30대가 사회에 본격 진출하면서 ‘한자 문맹세대’의 폐해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한자 문맹세대는 6차 교육과정(1992년 10월~1997년 12월)이 도입된 이후부터 학교에 다닌 ‘대학수학능력시험 세대’다. 그전까지 중·고교에서 필수교과이던 한문은 1990년대 한글전용론에 밀려 6차 과정에서 선택과목으로 바뀌었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행한 7차 교육과정(1998년 1월~2007년)을 거치면서 한문은 프랑스어 일본어 등 제2외국어와 같은 수준으로 위상이 약화됐다.

한자가 많이 포함된 행정용어를 사용하는 공직사회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상대방을 임의로 선택해 맺는 계약을 뜻하는 ‘수의계약’의 어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직원이 상당수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수의’라는 표현이 ‘隨(따를 수), 意(뜻 의)’로 ‘(자기) 뜻에 따라’ 선택한다는 뜻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아는 공무원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의 한자 지식이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신입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자 3급 자격증 이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교사 및 출판사 대표로 구성된 한자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은 ‘국어기본법이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언어생활을 강요하고 있다’고 2012년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이 헌법소원은 지난 5월 공개변론을 거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에 맞서 한글 전용론자들은 한자어는 쉬운 우리말로 바꿔쓰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한글학회 회장인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해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 지장이 없다”며 “일상생활에서 한글과 한자를 함께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