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 '갑질 성폭행'…난감한 금융위
“업무상 1%도 관계가 없습니다. 연인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일 뿐입니다.”(금융위원회 관계자)

지난 5일 ‘갑(甲)의 횡포’에 대해 취재하던 중 금융위원회 5급 사무관 A씨(32)가 산하 금융기관 여직원 B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은행, 증권사 등 모든 금융·투자기관을 관리하는 감독기관 직원이 산하 기관 여직원을 성폭행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도덕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금융위의 태도는 상식 밖이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실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미혼인 젊은 남녀가 소개팅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며 “이후에도 만남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오히려 “공무원이 산하기관 직원과 소개팅하면 무조건 갑을(甲乙) 관계에서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업무 관련성이 없느냐’는 질문에도 “단 1%도 없다.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이 같은 변명은 하루 만에 거짓말로 드러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해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6일 금융위 국정감사에서 사무관 A씨가 중소서민금융정책관실에서 근무 중이고 피해를 당한 여직원 B씨는 산하기관인 J은행중앙회 소속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업무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성폭행이 벌어진 당일은 소개팅이 아니라 J은행중앙회 과장과 여직원 2명이 사무관 A씨를 접대하던 자리였다.

A씨는 지난 4월 서울 종로구의 한 커피숍에서 B씨와 술을 마신 뒤 만취한 그를 껴안는 등 추행하고 B씨를 업고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강제로 성관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의원은 금융위가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사건 이후 여직원 B씨가 바로 신고하자 금융위가 종로경찰서에 연락해 ‘이미지 훼손이 우려된다’며 조용히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해명자료를 통해 “7월 수사 개시 통보를 받고 감사담당관과 담당과장이 사건 경위를 듣기 위해 종로경찰서를 한 차례 방문했다”며 “사건을 무마할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이날 국정감사에선 “금융권의 뒤틀린 접대 문화와 조직적인 은폐 의혹, 비상식적인 언론 대응 등 자정능력을 잃은 권력기관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준 사건”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소속 기관원의 일탈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 기관장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정현)는 이날 산하 금융기관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준강제추행·준강간)로 A씨를 구속기소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