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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현실이 때론 영화보다 더 참혹하다

입력 2016-10-06 18:13:50 | 수정 2016-10-07 02:30:59 | 지면정보 2016-10-07 A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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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네 남매처럼
무관심 속 방치되는 아이들 더는 없어야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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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점심을 먹으러 회사 근처 식당을 찾았을 때다. 여느 날처럼 한 귀로 벽걸이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밥을 뜨던 찰나 맞은편에서 식사하던 손님이 갑자기 버럭 욕을 했다. 누구에게 한 소리일까, 깜짝 놀란 나는 뜨던 숟가락을 멈춘 채 그분을 바라봤다.

손님의 머리 위 TV에서는 일곱 살 어린이를 암매장한 부모의 뉴스가 흐르고 있었다. 손님과 식당 주인아저씨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큰 소리로 욕설이 섞인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금세 뉴스는 다른 보도로 넘어갔지만, 식당 안은 한참 동안 소란스러웠다. 그런 것을 공분(公憤)이라 하는 것이겠지 싶은 풍경이었다.

그날 오후 오랜만에 한 편의 영화를 떠올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4년 작품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스가모 어린이 방치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도쿄의 변두리 한 작은 아파트에 젊은 엄마와 네 명의 아이들이 이사를 온다. 출생신고가 안 돼 학교도 바깥 외출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네 명의 아이들. 어느 날 엄마는 크리스마스 전에 돌아오겠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12살 장남 아키라에게 동생들을 부탁한 채 새로 만난 남자친구에게로 떠나 버린다. 영화는 엄마가 떠난 뒤 세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방치된 채로 살아가는 네 남매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절제된 시선으로 담아낸다.

‘아무도 모른다’는 불행한 상황에 몰린 아이들의 삶을 어른들의 눈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감정적인 연출을 최대한 배제하고 철저히 어린아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영화화를 결심하고도 무려 15년간 시나리오를 다듬었다는 감독의 고민과 의도가 영화 전반에서 섬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한 번도 연기 경험이 없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실제 계절과 시간에 맞춰 1년여간의 촬영을 통해 얻은 그림들은 오히려 한없이 밝고 따뜻한 톤의 영상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더욱 깊고 묵직한 슬픔이 배어 나온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촬영한 덕택에 아이들의 캐릭터는 연기를 넘어서는 천진난만함이 살아 숨쉬고, 그 결과 주인공 아키라 역의 야기라 유야는 57회 칸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점심을 먹던 그날 오후, 10여년 전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그저 타국에서 일어난 지극히 특별한 경우라 생각하고 말던 내 자신을 떠올렸다. 더불어 지난해 맨발로 인천의 집에서 탈출해 슈퍼에서 발견된 몸무게 16㎏의 11살 소녀가 아니었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사라진 아이들의 전수조사조차 시작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하는 무서운 가정(假定)도 떠오른다.

영화 속에는 네 남매가 방치된 것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는 어른들이 등장한다. 월세가 밀렸다며 찾아온 집주인, 아키라가 유통기한이 지난 공짜 삼각김밥을 얻으러 가는 편의점의 직원, 보호자 없이 지내는 것을 눈치챈 이웃들이 그렇다. 모두 아이들의 변화를 눈치채지만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실제 사건은 더 참혹하다. 영화는 좀 더 따뜻하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존재가 알려지면 안되기에 외출이 금지된 남매 중 매일 의자에 올라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던 조그만 꼬마 막내 유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현실은 때론 영화보다 참혹하다.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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