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디벨로퍼 노범정 로코퍼레이션 회장 "맨손으로 시작해 맨해튼에 13개 건물 지었죠"
미국 뉴욕 맨해튼은 부동산 개발업자의 무덤으로 불린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부동산이 거래되는 곳인 만큼 최고의 전문가들이 승부를 겨룬다. 야구로 따지면 메이저리그다.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도 투자 실패로 네 번이나 파산을 신청했다.

이곳에서 자신의 성(姓)을 딴 부동산개발회사 ‘로(ROE)코퍼레이션’을 운영 중인 노범정 회장(사진)은 맨해튼 일대에 내로라하는 파트너들과 함께 지금까지 13개의 호텔, 아파트, 사무실 빌딩을 올렸다.

최고급 주택가로 알려진 센트럴파크 남단 어퍼웨스트 지역과 금융회사가 밀집한 파크애비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첼시 등 맨해튼에서도 최고 입지로 평가받는 지역들이다. 최근에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53층짜리 럭셔리 아파트를 짓는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한 채당 평균 가격이 430만달러(약 47억5000만원)에 달한다.

올해 72세인 노 회장이 세계 디벨로퍼들과 경쟁하면서 맨해튼의 알짜 부지에서 연이어 대형 투자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비결은 35년간 밑바닥부터 쌓은 노하우와 인맥 덕분이다. 노 회장은 1975년 31세의 나이에 단돈 1200달러만 들고 태평양을 건넜다. 그는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개성상인 집안 출신인 그는 돈을 버는 재주가 남달랐다. 맨손으로 뉴욕에 도착했지만 1981년 자신의 이름을 건 부동산 중개회사를 차렸고, 10년이 채 안 돼 맨해튼에 12개의 건물을 가진 거부가 됐다.

하지만 1990년대에 불어닥친 불황은 그를 무일푼으로 만들었다. 뉴저지 일대에 거금을 투자한 복합쇼핑센터가 실패하면서 은행에 담보로 잡힌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넘어갔다. 트럼프도 이때 파산을 신청했다. 노 회장은 그러나 곧바로 일어섰다. 본인 말대로 워낙 물건을 파는 데 탁월한 소질을 갖고 있어서 일감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당시 빈털터리였지만 인맥과 노하우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디벨로퍼’를 종합 예술가에 비유했다. 시장 흐름을 정확히 읽고, 투자 매물을 고르는 탁월한 안목과 함께 건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개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달리 미국 디벨로퍼는 직접 자금을 동원해 자신의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며 “평판과 신용이 생명”이라고 말했다.

노 회장이 추진한 13개 프로젝트의 파트너는 중국 최대 부동산 투자회사인 푸싱그룹을 비롯해 쉐라톤, 웨스틴 브랜드를 보유한 스타우드호텔 등이다. 미국 투자이민(EB-5) 제도를 맨해튼의 대형 부동산 개발과 접목한 비즈니스 모델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맨해튼 부동산은 안전자산과 다름없다”며 “확실한 사업주체를 끌어들여 프로젝트 안정성을 확보하고, 최고 시공업체를 내세워 부가가치를 높임으로써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계에서 5억3000만달러의 투자금을 끌어들였고, 영주권을 받은 가구만 1062가구에 달한다.

노 회장의 또 다른 계획은 자신의 이름을 건 빌딩을 올리는 것이다. 맨해튼을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와 가까운 곳의 건물을 매입한 그는 53층짜리 호텔이 들어서는 주상복합 건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그는 “부동산 투자에서는 가격보다 안목이 더 중요하다”며 “거품 논란에도 불구하고 맨해튼에는 여전히 많은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