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백화점
세계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도시에 들르면 백화점을 꼭 찾는다. 백화점이야말로 한 도시의 상징이요, 현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쇼핑은 덤이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봉마르셰는 지금도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빠뜨리지 않는 명소다. 1852년 세워진 봉마르셰는 실내외를 화려하게 꾸며 당시에도 베르사유에 빗대 ‘소비의 궁전’으로 불렸다. 이후 영국에서 휘틀리, 해러즈 백화점이 생기며 유럽에 백화점 바람이 불었고 1870년대엔 이 바람이 미국까지 건너갔다. 워너메이커, 메이시, 마셜필드 등이 이때 생긴 백화점들이다.

19세기 중후반은 산업혁명이 꽃을 피운 시기다. 하루가 다르게 새 상품이 쏟아졌고 일반인의 생활에도 여유가 넘쳤다. 백화점은 이 시기의 산물이다.

아시아에 현대식 백화점이 처음 생긴 것은 1904년이다. 도쿄에 들어선 미쓰코시 백화점이 효시다. 이 미쓰코시가 1930년 서울에 세운 것이 미쓰코시 경성점으로 신세계백화점의 전신이다. 이후 화신백화점(1931) 동아백화점(1932) 등이 들어서며 국내에서도 백화점 시대가 열렸다. 여점원들이 등장하면서 “미인들은 비행기와 백화점 안에 모여있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한국은 1980년대 들어 중소업체들까지 우후죽순 백화점업에 뛰어들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됐다. 최근엔 대형마트, 복합쇼핑몰, 아울렛 등 경쟁자들이 나타나면서 과거보단 못하지만 한국 백화점들은 여전히 소매업계의 왕자로 군림하고 있다. 한국 백화점은 직매 비중이 절반 가까이 되는 외국과는 달리 판매업체에 자리를 빌려주고 30~40%의 수수료를 받는 ‘입점 장사’를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에서 백화점이 잇달아 폐업하면서 쇠락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작년 2월 이후 주요 백화점 11곳이 폐업했거나 폐업을 예고하고 있다. 매출도 크게 줄어 일본 전국 백화점 매출이 2015년에 6조1742억엔(67조3982억원)으로 1990년에 비해 약 63% 수준에 그쳤다. 오랜 불황 탓에 중산층 구매력이 크게 준 데다 젊은 소비자들이 저가쇼핑몰을 찾거나 인터넷으로 구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화점 명칭을 두고는 얘기가 많다. 청나라 때 만가지 물건을 파는 만화점(萬貨店)이 있었는데, 이곳에 들른 황제가 자신이 찾는 물건이 없다며 백화점으로 바꾸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화제방(百花齊放)에서 보듯 ‘백’자 자체가 꽉차고 많다는 뜻이니 믿을 것은 못 된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