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노동법이 귀족노조 파업 방조하고 있으니
얼마 전 대한문 앞을 지나다 시위대를 만났다. 장기 파업 탓에 존폐 위기에 몰렸다는 갑을오토텍이다. 당연히 노조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예상 밖이었다. 관리직 직원들이었다. 부도 위기에 몰려 관리직이라도 생산 현장에 나서야겠는데 노조가 공장을 불법 점거하고 있으니 공권력이 노조를 쫓아달라는 하소연이었다. 석 달 가까운 파업이다. 협력사들까지 줄도산 위기에 놓였을 테다. 하지만 이 회사에 공권력이 투입됐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기업이 노조 파업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모든 칼자루는 노조가 쥐고 있다. 노조는 파업 선언과 함께 공장을 점거한다. 생산 활동은 전면 정지된다. 회사는 그때부터 노조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직장폐쇄라는 게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요건이 무척 까다롭다. 판사가 적법하지 않다고 판결하면 사용자는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직장폐쇄를 해도 노조가 직장을 불법 점거하면 그뿐이다. 공권력이 투입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노사 문제는 노사가 직접 풀라는 원론만 되풀이하는 정부다. 갑을오토텍이 지금 그 지경이다.

노조는 온갖 무기로 중무장하고 있다. 반면 회사는 무장 해제 상태다. 한국 노조가 세계 최강이 아닐 수 없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또 장기 파업이다. 평균 임금이 1억원에 육박한다는 귀족노조다. 그런데도 매년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며 파업을 일삼는다. 사회의 비난이 쏟아진다. 노조라고 귀가 없겠는가.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 파업이 길어질수록 회사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대체근로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노동법상 불법이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노조 힘은 더 강해질 수밖에.

노조는 즐겁다. 임금 인상은 물론이다. 파업 중 밀린 임금이 일시금으로 지급되고 타결 성과급까지 기다리고 있다. 정말 기분 좋은 유급 휴가다. 그런데도 파업을 안 하면 바보가 아닌가.

파업이 장기화되면 다른 인력을 투입해서라도 공장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세계 모든 나라가 대체근로를 허용한다. 이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가 한국과 아프리카의 말라위 두 나라뿐이라면 믿어지는가. 노동3권의 개념조차 없던 1953년, 노동쟁의조정법을 제정하면서 세계 처음으로 등장한 규정이 살아남아 귀족노조를 살찌우고 나라 경제를 좀먹고 있다.

선진국은 어떤가. 노조가 파업하면 즉각 사업장부터 비워야 한다. 직장 점거 자체가 불법이다. 회사는 일시적으로 외부 인력을 대체할 수 있다. 게다가 파업 참가자가 복귀를 거부하면 영구적으로 인력을 대체하는 게 가능하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할 것 없다.

1981년 미국 항공관제사 노조의 파업을 기억해보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파업에 참가한 관제사들을 모두 해고했다. 현대차 노조만큼이나 파업을 즐기던 노조다. 당시 이들은 30%가 넘는 임금 인상과 8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했다. 레이건 행정부는 더 이상 밀려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48시간 이내 복귀하지 않는 관제사는 모두 해고한다고 통보했다. 결국 1만1345명의 관제사가 해고됐다. 재취업도 영구 금지됐다. 빈자리는 파업에 불참한 관제사와 다른 공공기관 관제사들로 메워졌다. 그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하늘길이 막히는 일은 크게 줄었다.

파업을 일삼는 현대차와 코레일에 대체인력을 투입한다면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복귀하지 않는 노조원을 해고까지 한다면 말이다.

상위 10% 소수 귀족노조 파업이 90%에 해당하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 구조다. 이제 국가와 국민이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하지만 노사 간 교섭력이 지금처럼 불균형하다면 그런 구조는 영원히 해소될 수 없다. 대체근로가 가능하도록 회사에도 노조와 대등한 힘을 줘야 하는 이유다.

어디 대체근로뿐인가. 파견근로와 기간제 활용, 아웃소싱, 전환배치 등 모든 규정이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다. 노동법이 귀족노조의 떼쓰기나 방조하는 게 현실이라면 나라 경제에 무슨 비전이 있겠는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