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코리아! 이대론 안 된다] 중국 명승지 '구채구' 돌아보려면 '18만원'…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은 '0원'
중국 쓰촨성의 주자이거우(九寨溝·구채구)는 ‘세속의 선경(仙境)’으로 불린다. 3㎞에 달하는 원시삼림과 대형 폭포인 전주탄(珍珠灘)을 비롯해 옥색을 품은 다양한 호수가 있어 마치 선계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중국은 물론 세계에서 하루 5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들은 이곳에서 입장료와 케이블카 이용료만으로 10만원 넘게 지출한다. 부대비용까지 합치면 1인당 100만원가량 쓴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주자이거우를 보려다 주머니를 탈탈 털리고 간다”는 얘기도 나온다. 유럽이나 미국도 마찬가지다. 수려한 자연만을 보도록 놔두지 않는다. 케이블카 등 이것저것 만들어 돈을 많이 쓰고서야 경치를 완전히 즐기게 한다. 한라산이나 설악산 등 풍광이 빼어난 국립공원의 입장료조차 받지 않는 한국과는 천양지차다.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하는 융프라우


주자이거우는 쓰촨성에서도 외지다. 자유여행으로 가기는 힘들다. 쓰촨 청두공항에서 주자이거우까지 택시비만 500위안(약 8만2255원) 이상 나온다. 입장요금도 성인 기준 220위안(약 3만6200원)이다. 매표소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인 창하이나 원시삼림을 가려면 90위안(약 1만4800원)을 또 내야 한다. 종점까지는 30㎞가 넘기 때문에 버스를 타지 않고는 관람이 불가능하다. 주자이거우에서 100㎞ 정도 떨어진 황룽풍경구는 주자이거우와 함께 연계 관광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황룽풍경구까지 보려면 입장요금 200위안(약 3만2900원)에 케이블카 80위안(약 1만3160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중국인들도 대부분 패키지여행으로 주자이거우를 방문한다. 값이 싼 패키지 여행상품도 최소 80만원을 넘는다. 한국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조선족 출신 김선녀 씨는 “풍경구마다 입장료에 별도 케이블카 이용료를 내야 하다 보니 관광객 사이에서는 주머니를 다 털려야 주자이거우를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 코리아! 이대론 안 된다] 중국 명승지 '구채구' 돌아보려면 '18만원'…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은 '0원'
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산악관광지로 유명한 스위스 인터라켄도 그렇다. 이곳을 제대로 즐기려면 최소 40만원 이상 지출해야 한다. ‘유럽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인터라켄의 융프라우에 오르려면 유명한 산악열차를 타고 융프라우요흐까지 가야 한다. 구간마다 기차표를 끊으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싸다. 따라서 보통 스위스트래블패스를 끊는다. 해당 기간 무제한으로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서다. 스위스트래블패스는 대개 3일권부터 시작되는데 2등석이 210유로(약 25만9500원) 수준이다.

여기에 패러글라이딩(155유로·약 19만4000원)이나 인터라켄 나이트썰매(80유로·약 10만원) 등 레저스포츠를 하나만 즐겨도 40만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한다. 융프라우 정상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려면 돈이 더 든다. 항공료나 숙박료를 빼고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은 중국의 주자이거우나 스위스를 비싼 돈에 갔다 왔다고 후회하지 않는다. 그만큼 보고 즐겼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자연경관 없이도 돈 버는 캔디기념관

주자이거우와 융프라우의 공통점은 빼어난 볼거리라는 점이다. 관광객은 이를 보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렇다고 빼어난 자연경관이 관광수입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스토리를 입히거나 문화상품을 개발해 관광객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것이 관광 선진국의 공통점이다.

비틀스 박물관
비틀스 박물관
영국 리버풀은 온통 비틀스 천지다. 비틀스 박물관인 ‘비틀스 스토리’는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거리에는 비틀스 티셔츠, 배지, 음반 등 기념품을 들고 다니는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는 로큰롤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도시다. 엘비스 박물관에는 그가 생전에 입은 의상을 비롯해 사용했던 당구대 및 앨범 등이 전시돼 있다. 이를 보기 위해 매년 60만명이 이곳을 찾는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와 관련된 수많은 기념품과 공연으로 도시 전체가 먹고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지방도시 구라시키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만화 ‘캔디 기념관’이 있다. 조그마한 2층짜리 기념관에는 다양한 캔디 캐릭터와 만화 속 의상이 전시돼 관광객을 유인한다. 방문객은 1000엔(약 1만원) 정도를 낸 뒤 캔디 드레스를 입고 기념촬영을 하거나, 캔디 만화그림이 든 기념액자를 구매하기도 한다. 움직이고, 즐길 때마다 돈을 내는 것은 물론이다.

돈 한 푼 받지 않는 한라산

한국은 다르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는 돈을 받지 않는다. 관광지에 얽힌 스토리도 부족하거니와 애써 문화상품을 만들어 놓고도 헐값에 팔고 만다. 관광객으로선 돈을 쓰고 싶어도 마땅히 돈을 쓸 곳이 없다.

한국 국립공원은 22곳이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그런데도 돈 한 푼 내지 않고 이곳을 둘러볼 수 있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2007년 폐지됐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한라산국립공원도 마찬가지다. 입장료도 없거니와 케이블카 등 탈것도 없다. 백록담을 보려면 걸어 올라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제주도에 오는 중국인 중 한라산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떨어뜨리는 돈’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비단 국립공원만이 아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남도권의 주요 여행지 중 하나인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입장료는 성인 기준 8000원에 불과하다. 매년 100만명 가까운 관광객이 찾는다는 제주도 ‘유리의 성’ 입장료는 1만1000원이다. 그나마 중국인 단체 관람객에게는 고작 5000원만 받는다. 아시아 최대 규모 아쿠아리움인 아쿠아플라넷 제주조차 단체 관람객에게는 정상가(3만9500원)에서 30~40% 할인된 가격을 적용하고 있다. 테디베어 박물관, 믿거나말거나 박물관 등 제주 주요 관광지도 마찬가지다.

김상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국내 관광지는 입장료가 싸고 대부분 단순 관람형이 많아 우리 관광 자산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입장료 외에 관광객이 돈을 쓰도록 유도하는 콘텐츠를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