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주 주가에 상당한 거품이 끼었을 것이란 우려가 국내 증시에 적잖은 여진을 낳고 있다.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 파기와 늑장 공시로 바이오주 불안을 촉발했던 한미약품은 이틀째 급락세를 이어갔다. 주요 증권사도 경쟁적으로 한미약품 목표주가를 내렸다. 신약 기술수출 기대에 힘입어 최근 1~2년간 주가가 크게 올랐던 다른 제약·바이오주도 동반 하락을 면치 못했다. 증권가에선 “제약·바이오주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악재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련의 제약·바이오주, 재평가 시작됐다
◆목표가 30% 넘게 잇단 하향

주요 제약·바이오주들은 4일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막론하고 일제히 부진했다. 늑장 공시 파문으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던 한미약품은 이날 7.28% 빠진 47만1000원에 마감했다. 지난달 30일 18.06% 폭락한 데 이어 장중에 14.37%나 급락하는 등 불안이 가라앉지 않았다.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도 8.33% 하락했다. 지난달 30일 이후 한미약품 시가총액은 1조5554억원, 한미사이언스 시가총액이 2조401억원 줄어드는 등 한미약품그룹 시가총액은 2거래일 새 총 3조5955억원이 증발했다.

이날 JW중외제약(-15.15%) 보령제약(-2.62%) 종근당홀딩스(-1.83%) 등 제약주들도 떨어졌다. 코스닥시장에서도 JW신약(-5.50%) 셀루메드(-4.92%) 알테오젠(-4.55%) 코미팜(-0.47%) 코오롱생명과학(-1.03%) 등 제약·바이오주 대표주자들이 대부분 부진했다.

한미약품의 중장기 전망을 바라보는 증권가 시선은 싸늘해졌다. 이날 한국투자증권, 대신증권 등 7개 증권사가 한미약품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유진투자증권, HMC투자증권, 대신증권은 목표주가를 이례적으로 30% 넘게 대폭 낮췄다. KTB투자증권과 SK증권 등 4개사는 목표주가를 상향한 지 불과 1거래일 만에 다시 내렸다. 항암신약 기술수출 계약이 취소되면서 기존에 계약된 신약 가치도 재평가해야 한다는 근거에서다. 하지만 신약 개발 리스크(위험)를 투자자에게 알리는 절차가 ‘호재 뒤 기습 악재 공시’ ‘늑장 공시’라는 부적절한 방식으로 이뤄져 시장의 신뢰를 훼손한 점에 더 주목하는 모습이었다.

정보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임상 실패, 기술계약 해지는 제약업계에선 ‘성장통’이라고 하지만 한미약품이 이 같은 사실을 시장에 알리는 방식이 적절하지 않았다”며 “지난해에도 기술수출 계약에 이은 적자실적 발표로 주가가 폭락했던 전례가 있어 한미약품에 대한 신뢰 문제로 번졌다”고 말했다.

◆바이오주 ‘허리’ 꺾였나

증권가에선 이번 한미약품 사태로 신약개발 리스크가 크게 부각된 만큼 2014년 중순 이후 지속된 제약·바이오주의 성장세가 꺾일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지속된 제약·바이오주의 높은 주가를 정당화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며 “지난 20여년간 제약·바이오주는 대세가 꺾인 뒤에는 급락하는 모습을 반복했다”고 우려했다.

제약·바이오주 내에서도 ‘거품’ 여부를 따지는 검증작업이 본격화될 것이란 시각도 제기된다. 서근희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미약품이 연이어 기술수출 계약을 하면서 다른 제약·바이오 업체들도 기술수출을 통해 ‘대도약’할 것이란 기대가 컸다”며 “이번 한미약품 계약 파기 건을 계기로 신약개발 성공 여부에 대해 보수적인 판단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강양구 HMC투자증권 연구원도 “과거 한미약품 크리스탈지노믹스 LG생명과학 등 기술수출 규모가 1조원이 넘을 경우 단기간에 시가총액이 1.5~2배 가까이 느는 프리미엄을 받았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해외 주요 제약사들처럼 총 기술수출 금액의 20~30%가량만 인정받는 풍토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봤다.

김동욱/김진성 기자 kimdw@hankyung.com